故 백남준 선생 부인 구보타 시게코 여사 "떠난 지 5년… 보고플 땐 비디오를 보죠"

47년 전, '비디오 아트'의 거장 백남준을 처음 보고 "이 남자를 꼭 잡고 말겠다"고 했던 구보타 시게코(74) 여사는 여전히 그를 사모했다.

백남준 추모 5주기를 맞아 9일 뉴욕 한국문화원에서 열린 '백남준의 삶과 예술' 사진전(작가 이은주)에서 만난 구보타 여사는 꿈 얘기를 했다.

"지난 설날 꿈에 남준이 나타났는데 독일의 아파트에서 빗자루로 방을 쓸고 있어요.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한쪽엔 푸른 잔디가 있고, 다른 쪽엔 대리석이 깔려 있어요. 무덤인 거죠. 요즘 그가 살고 있는 아파트인 모양이에요.(웃음)" 백남준은 2006년 설날을 며칠 앞두고 세상을 떴다.

구보타 여사는 타계 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를 곁에 두고 있다. 처음 데이트했던 캐널가, 생일날 차이나타운 '456' 레스토랑에서 함께 먹은 음식, 그와 살던 맨해튼 아파트가 좋아 뉴욕을 떠날 수 없다고 했다. "백남준이 다시 돌아와서 만져보고 같이 자보기도 했으면 좋겠는데 곁에 없는 게 현실이에요. 그 사람이 보고 싶을 때는 비디오를 봐요."

구보타 여사는 "그가 만든 작품과 그가 나온 비디오가 아파트에 가득하다"며 "비디오는 그와 나를 연결시켜주는 매체"라고 했다. 비디오 아트로 살을 맞대고 교류했던 예술적 동지이자 아내였던 구보타 여사는 이제 추억의 비디오로 그를 만나고 있다.

시대를 앞서 간 전위적 예술가였던 구보타 여사도 백남준이라는 이름 앞에서는 아직도 새색시 같았다. "백남준은 40년 전 욘사마였죠. 요미우리 신문에서 얼굴을 처음 보고 얼마나 잘생겼는지 그만 반했어요. 실제보다 사진이 훨씬 잘 나오는 남자예요." 그녀는 '다시 태어나도 백남준과 결혼하겠느냐'고 묻자 "나는 쫓아다니는 데 선수"라며 "다시 그를 쫓아다닐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TV부처' 얘기를 했다. 1972년 가난한 예술가 부부 시절, 도쿄에서 형으로부터 1만달러를 받은 백남준이 상당액을 맨해튼 골동품 가게에서 표정이 일그러진 불상을 사는 데 써버린다. "당시로선 큰돈인데 허섭한 불상을 사는 데 써버린 거예요. 속상했죠. 그런데 이 불상을 TV 앞에 앉혀놓은 거예요. 아이들도 못 보게 하던 TV를 부처가 보고 있는 거죠.(웃음)" 그녀가 기억하는 가장 행복한 시절은 백남준이 뒤셀도르프 교수로 재직하며 제법 봉급을 받아왔던 독일 시절이다.

구보타 여사는 "백남준이 아직 살아있으면 레이저 예술을 했을 것"이라며 "그는 레이저를 예술로 승화시키려고 했다"고 말했다.

투병 중이던 백남준은 미국 마이애미에서 아내에게 이런 글을 남겼다. '위대한 부인이고, 위대한 요리사이고, 위대한 간호사이고, 위대한 작가이고…, 그리고 이런 내용이 100페이지는 더 계속되는 구보타 시게코를 나는 사랑하고 존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