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G2 효과로 뜨는 대만경제, 두자릿수 성장

한국 경제가 두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한 건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이 마지막이었다. 10.7%. 그런데 1인당 국민소득이 한국과 비슷한 대만이 지난해 10.5% 성장했다. 1987년(10.7%) 이후 23년 만에 가장 높은 성장률이다. 10.3%를 기록한 중국보다도 높았다. 선진국인 대만이 1인당 국민소득이 3000달러에 불과한 신흥국 중국의 성장 속도를 앞지른 것이다.

2009년 마이너스 성장한 것과 비교했을 때 작년 성장률이 높게 나오는 기저효과(base effect) 영향도 있었지만 작년에 중국과 교역협정을 맺으며 수출이 급증한 영향이 컸다. 또 미국의 경기가 회복되면서 대만 IT 기업들의 실적이 개선되고 있다. 한국이 글로벌 경제위기에서 빠르게 회복되는 2009년에는 비틀거리던 대만 경제가 지난해 '10%'라는 충격적인 성장률을 들이밀며 다시 한 번 일어서고 있다. 한마디로 대만 경제는 '미국과 중국'이라는 G2체제의 수혜국으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효과'로 빠르게 성장한 대만 경제

불과 얼마 전만 해도 대만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으며 빈사(瀕死) 상태에 빠졌다. 2009년 대만의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 2%였다. 하지만 작년부터 급속히 반전 드라마를 쓰기 시작했다. 이른바 '중국효과'다.

작년 6월 대만은 자유무역협정(FTA)과 비슷한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을 중국과 체결했다. 민진당이 집권한 8년간 얼어붙었던 중국·대만 관계가 2008년 마잉주(馬英九) 국민당 정부가 들어서면서 급속히 가까워진 결과였다. 대만의 석유화학·자동차 부품 등 540여개 품목이 무(無)관세로 중국 시장에 진입, 달리는 중국의 성장 열차에 올라탈 수 있게 됐다.

지난해 대만의 수출은 34.8% 급증하면서 사상 최고 기록을 세웠다. 전체 수출의 41.8%가 중국과 홍콩에 대한 수출이다. 대만 정부는 ECFA 체결로 연간 138억달러(약 15조원)의 경제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분석한다.

중국은 협정 체결 전부터 대규모 구매단을 대만에 파견해 40만~50만달러어치씩 대만 제품을 사주는 등 '형제애'를 과시했다. 미국 월가에선 '차이나(중국)'와 '타이완(대만)'의 합성어인 '차이완'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여행객들은 대만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2008년 7월 중국과 대만의 문호 확대 조치 이후 작년 말까지 182만명의 관광객이 대만을 찾아 31억6000만달러(약 3조5000억원)의 돈을 뿌리고 갔다.

◆대만을 주목하는 해외 투자자들

대만 경제가 급성장하자 해외 투자자들도 대만을 주목하고 있다. 미국 투자은행 모간스탠리는 지난달 21일 '아시아 신흥국 증시 가운데 대만이 한국보다 더 투자할 만하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해외 자금이 대량 유입되면서 대만 수도 타이베이의 작년 주택가격은 전년과 비교해 사상 최고 폭(18.2%)으로 올랐다. 8일 글로벌 외환시장에서 1달러당 28.9대만달러에 거래돼 1997년 이후 14년 만에 대만달러 가치는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지난달까지 상승세를 탔던 대만 증시는 이집트 민주화 사태와 중국의 금리 인상 등의 여파로 2월 들어 하락세로 돌아섰지만, 전망이 비관적이지는 않다. 대만 경제가 호조를 보이고 있어 증시도 단기간에 회복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많다. 서동필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1월 대만의 소비자물가상승률(CPI)은 전년 동기 대비 1.1%로 낮기 때문에 인플레이션 위험이 다른 아시아 신흥국들보다 적다"면서 "다만 외국인 투자자들이 아시아 신흥국 증시에서 전반적으로 발을 빼면서 대만 주가도 덩달아 떨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미국 경제가 지난 4분기부터 서서히 회복되면서 대만에 '미국효과'도 기대된다. 스마트폰 업체 HTC의 작년 4분기 순이익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170% 급증했다.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 업체(파운드리)인 TSMC 역시 작년 순익이 전년보다 81% 증가한 1616억달러를 기록했다.

◆중국 시장에서 위협적인 대만

전문가들은 '차이완 이펙트(효과)'가 중국 시장에서 한국 기업들을 위협할 장애물로 보고 있다. ECFA로 인해 관세 인하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올해부터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중국이 대만에 관세를 인하해주기로 허락한 539개 품목 중 494개 품목을 한국도 중국에 수출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과 대만의 대(對)중국 수출 품목을 비교했을 때 상위 20개 중 14개가 겹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도체와 LCD·석유화학 등이다. 양측에서 겹치는 14개 품목이 한국의 대(對)중국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0%가량이나 된다.

다만 대만 정부는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작년의 절반 수준인 5.0%로 낮춰 잡고 있다. 미국 경제가 다소 회복되긴 했지만 고용 부진 등의 문제로 여전히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금리 추가 인상도 부담이다. 작년에 세 차례 기준금리를 올린 대만 정부가 올해도 금리를 추가 인상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허재환 대우증권 연구위원은 "금리 인상은 소비·투자를 둔화시켜 경제 성장엔 부정적"이라며 "한국 기업과의 경쟁에서 밀린 대만 D램 반도체 업체들이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점도 대만엔 걸림돌"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