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회사 불법 입증 안돼… 흡연은 당사자 선택"

이번 담배 소송 항소심 재판부는 "개별 흡연자들이 담배를 피워 폐암에 걸린 사실은 인정되지만, 그렇다고 담배회사가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고는 볼 수 없다"며 원고에게 패소 판결을 내렸다.

KT&G에 배상책임을 물을 수 없는 이유로 재판부는 ▲담배에 발암물질이 포함된 타르나 니코틴 등이 들어 있지만, 제조와 판매가 법이 정해진 절차에 따라 허용된 점 ▲담뱃갑에 인쇄된 경고문구를 감안할 때 KT&G가 유해 정보를 은폐하거나 거짓 정보를 제공했다고 볼 수 없으며, ▲경고문구를 쓰기 전인 1976년 이전이라도 당시 인식 수준 등을 감안하면 불법으로 볼 수 없다는 점 등을 들었다.

폐암 환자 가운데 4명은 흡연 때문에 폐암에 걸렸다는 것은 인정받았지만, 담배회사의 불법행위 입증에 실패해 배상 책임까지는 끌어내지 못한 것이다. 법원 관계자는 "어떤 행위와 그 결과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돼도 행위 자체가 불법행위가 아니라면 그 행위로 피해를 입었어도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담배회사의 어떤 행위가 입증돼야 불법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까? 원고들은 KT&G가 담배 제조 과정에서 넣은 일부 첨가물이 폐암 발발의 주된 원인이 됐다는 주장을 펴왔다. 그러나 실제 제조 과정상 첨가물인 향료, 조연제(잘 타도록 도와주는 물질) 등의 성분이 흡연자들의 폐암 발병을 촉진시킨다는 점은 입증하지 못했다. 법원 관계자는 향후 재판에서 이런 점이 입증된다면 불법행위가 인정돼 손해배상청구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폐암환자들은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서 치료비와 위자료 등 1인당 수백만~수천만원 이상의 배상금을 받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한편 의학적 기준으로 볼 때 이번 판결은 '흡연이 폐암을 일으킨다'는 인과(因果)관계를 법원이 명확히 인정했다는 점에서 1심 판결보다 한발 더 나아간 것이다. 법원은 특히 폐암의 여러 종류 중 편평상피암과 소(小)세포암의 발생은 흡연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명시했다. 이 암들은 주로 폐의 입구에 해당되는 기관지 쪽에 잘 생긴다. 편평상피암은 폐암의 40~50%, 소세포암은 20~25%를 차지한다.

담배 소송 과정 중 국내 국립암센터 등 의료전문가 그룹이 법원에 제출한 의견서를 보면, 흡연 습관은 담배에 함유된 니코틴 중독이 주된 요인이다. 이로 인해 흡연자는 담배를 계속 태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그 과정에서 50여 종의 발암 물질과 4000여 종의 유해 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된다. 결국 체내 유전자 변이가 일어나, 폐암이 발생하게 된다.

이번 판결에서 법원은 니코틴 의존증이 있다고 해서 금연을 못 할 정도로 제약된 것은 아니라고 했다. 니코틴에 중독됐어도 개인의 의지에 따라 금연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의료전문가들은 "금연에 성공하는 비율은 5~10%밖에 안 된다"는 의견을 냈다.

김선욱 의료전문 변호사는 "법원의 견해는 흡연 책임을 일정 부분 흡연자에게 지운 것"이라며 "향후 흡연 피해 배상을 담배 제조회사에 물리는 데 불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