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때 중공군에 맞서 치열한 전투를 치렀던 강원도 철원 광덕산(1045m) 북쪽 비탈에서 국군 장병 유해 62구와 중공군 유해 18구가 발굴됐다. 이곳은 1951년 4월 22일 중공군 5차 공세 때 국군 6사단이 적 4개 사단에 맞서 싸우다 1600여명이 전사 또는 실종된 일명 '사창리(史倉里·현재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 전투' 지역의 가장 북쪽이다.
발굴된 유해는 처절했던 당시의 전투 상황을 고스란히 전해주는 듯하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유해, 소대장과 통신병으로 추정되는 꼭 껴안은 모습의 유해 등 여러 형태의 유해들은 포탄이 사방으로 튀던 전장 속의 두려움과 전우애(戰友愛)를 말없이 이야기해 주고 있다. 탄알과 탄피, 반합과 숟가락, 만년필, 전투화 밑창, 군장고리, 유리약병, 녹슨 철모 등 1200여점도 함께 나왔다. 총과 군번줄은 후퇴한 국군이 가져갔는지 발견되지 않았다. 이 언저리 어딘가엔 전사 혹은 실종 처리된 1600여명 병사들이 아직 묻혀 있을 것이다.
사창리 전투는 중공군 4개 사단 6만여 병력이 오후 5시 철원 쪽에 포진한 미 24사단과 화천 쪽에 포진한 미 해병 1사단의 중간 지역을 지키던 국군 6사단을 공격하는 걸로 시작됐다. 국군의 전투력이 미군에 비해 약하다고 보고 미군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것이다. 중공군의 공격을 막아내던 6사단은 이틀 만에 무너졌으나, 그 기간만큼 중공군의 남하 속도를 늦췄다. 이 전투로 시작된 중공군의 5차 공세는 8일 만에 끝났다.
전사자 유해 발굴은 '국가가 전사자들과 유가족들에게 진 빚을 갚는 과정'이다. 그래서 제대로 된 국가는 전사자 유해를 찾는 일을 결코 멈추지 않는다. 영국·호주는 지난해 제1차 세계대전의 유해를 94년 만에 발굴했고, 미국은 지금도 베트남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 실종자 유해 발굴에 힘을 쏟고 있다.
우리는 6·25전쟁 국군 전사자 13만3192명 가운데 총 4698구를 발굴했고, 이중 60명의 신원을 확인했다. 발굴 작업이 끝나려면 아직 멀었다. 광덕산 비탈의 어둠 속에 묻혀 있다 59년 만에 세상의 빛속으로 다시 나온 국군 병사들의 유해는 이만한 나라를 가질 수 있도록 해준 사람들을 기억하고 있는가 하고 우리에게 묻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