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복(주식형펀드)' 對 '맞춤복(자문형 랩)'

기성복과 맞춤복을 비교한다는 건 이상할지 모른다. 애당초 두 상품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맞춤복이란 게 사실상 기성복과 비슷하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요즘 주식시장에서 대표 상품 경쟁을 벌이고 있는 펀드와 랩(랩 어카운트)의 비교가 바로 그렇다. 펀드는 수만명의 돈을 모은 뒤 섞어서 관리하는 기성복 같은 상품이라면, 랩은 고객 개개인 명의의 계좌를 따로 만든 뒤 관리해 준다. 펀드는 몸집이 상대적으로 큰 자산운용회사가 돈을 굴리지만, 랩은 몸집이 작은 투자자문사가 굴린다. 또 맞춤복이 일반적으로 비싼 것처럼 랩 쪽의 수수료가 펀드보다 비싼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두 상품이 실제로 운용되는 속을 들여다 보면 랩이 펀드와 별다를 게 없다. 맞춤형이라고 하지만 여러 고객의 계좌를 사실상 비슷한 방식으로 굴려주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 됐다. 거액 투자자가 아닌 소액 투자자의 돈을 하나하나 달리 굴려준다는 게 힘들기 때문이다. 랩이 펀드와 경쟁을 벌이면서 랩 수수료가 펀드 수준으로 낮아지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두 상품의 주된 판매 창구가 증권사라는 점도 똑같다.

그렇다면 이제 두 상품을 비교하는 것은 의미 있어진다. 두 상품 중 어느 쪽이 유리할까?

◆1라운드: 수익률은?

투자자들 입장에서 가장 관심거리는 수익률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펀드나 랩의 1라운드는 무승부다.

16일 본지가 입수한 A증권사의 자문형 랩 수익률을 살펴보면 최근 6개월 수익률(2월11일 기준)은 유리치투자자문이 36.31%로 가장 좋은 성적을 냈다.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 상승률(12.46%)과 펀드 평균 수익률(15.99%)을 크게 웃돈 성적이다. 이어 J&J투자자문(30.72%)·드림자산(22.91%)·한국밸류(21.74%)·브레인(19.14%) 순으로 좋은 성과를 냈다. 반면 인피니티·튜브·에이스투자자문은 한자리 수익률에 그쳐 자문형 랩 상품별로 수익률 격차가 컸다. 또 코스피지수가 2100을 넘어서고 나서 부진한 흐름을 보이는 최근 1개월 수익률도 그다지 좋지 않다. 특히 지난해 말 출시된 자문형 랩 상품들은 한 달 동안 4~6%의 손실을 내고 있다.

펀드는 어떨까? 최근 6개월 동안 가장 높은 수익을 낸 펀드는 교보악사운용의 '교보악사코어셀렉션'으로 31.17% 수익률을 기록했다. 이어 'K스타레버리지펀드'(30.38%)·'알리안츠베스트중소형'(29.36%)·'JP모간코리아트러스트'(28.69%) 순이다. 펀드 역시 최소 5%에서 최대 31%로 상품별로 수익률 격차가 컸다. 랩과 큰 차이가 없다.

◆2라운드: 수수료는?

수수료는 투자 기간이 길어질수록 수익률에 큰 영향을 미친다. '0.1% 차이쯤이야'라며 무시하고 넘어갈 게 아니다. 그런데 펀드와 랩은 이 2라운드에서도 전체적으로 보면 역시 무승부. 별 차이가 없다.

설정액 1조원이 넘는 한국운용의 '한국네비게이터1C1' 상품을 보자. 펀드를 판매하는 증권사나 은행이 1.5%, 펀드를 굴리는 운용사가 0.656%를 뗀다. 이외에 여러 가지 수수료를 다 붙여가다 보면 평균적으로 펀드 투자자는 연간 3% 정도를 수수료로 내게 된다.

반면 자문형 랩의 수수료 구조는 단순하다. 증권사가 연 3% 정도의 수수료를 떼가는 게 전부다. 주식을 아무리 자주 사고팔아도 매매수수료는 증권사가 부담한다. 다만 증권거래세는 투자자가 내야 한다. 자문형 랩 수수료는 최근 미래에셋증권이 연 1.99%로 낮췄고, 현대증권이 1.0~1.5%로 50% 인하하면서 수수료 인하 경쟁에 불을 지폈다. 물론 펀드도 수수료 체계가 천차만별이지만 일부 증권사에선 오히려 랩 수수료가 낮아졌다.

◆3라운드: 스피드는?

랩(자문형의 경우)과 펀드의 가장 큰 차이점은 투자 종목 수이다. 펀드는 최소한 50여개 종목에 투자하지만, 랩은 약 20여개 종목에만 투자한다.

이 때문에 랩은 주식시장이 크게 움직일 때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 움직이는 스피드에서는 자문형 랩이 우위다. 몇 가지 되지 않는 종목을 빠르게 교체할 수도 있고, 집중 투자하는 만큼 해당 종목이 급등세를 타면 수익률도 단숨에 좋아질 수 있다. 랩이 인기를 모으는 것도 '모 아니면 도'라는 명쾌한 스타일의 운영방식 때문이기도 하다.

투자자 입장에서 봐도 속 시원하다. 내가 투자한 몇개 종목 주가를 체크해 보면 주식시장에 투자하고 있다는 실감도 난다. 스피드 면에선 자문형 랩이 단연 우세다.

◆4라운드: 안정성은?

반면 안정성은 펀드가 압승이다.

펀드는 여러 종목에 투자하기 때문에 한두 종목이 예기치 못한 악재를 만나 급락하더라도 펀드 전체 수익률이 급격히 나빠지지는 않는다. 반면 자문형 랩은 종목 선택을 잘못했을 경우 크게 흔들릴 수 있다. 발 빠른 대응이 가능한 장점도 있지만 반면, 또다시 종목선택을 잘못하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빠질 수도 있다.

펀드를 굴리는 자산운용사가 랩을 굴리는 자문사보다 덩치가 크다는 점도 안정성과 연결된다. 아무래도 여러 사람이 머리를 맞대다 보면 상대적으로 안전하게 돈을 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랩은 이런 위험조차 모두 관리해 준다고 주장한다. 주식형 펀드는 규정상 일정 비율 이상 주식을 가지고 있지만, 랩 상품은 다급할 때는 주식을 모두 팔고 극히 안전하게 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안정성 면에서는 펀드의 손을 들어준다.

요약해 보자면 펀드와 랩은 현재 상황에선 대체로 무승부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선택을 할 때 증시 상황을 감안하라고 조언한다. 신한금융투자 이계웅 펀드팀장은 "랩은 시장이 전반적으로 상승세일 때나 특정 테마가 분명하게 부상할 때 유리한 상품"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증시에서 외국인들의 매도세가 특정 종목에 집중되고 있기 때문에 소수 종목에 집중 투자하는 랩 투자에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투자자 스스로의 투자 성향도 고려해야 한다. 메리츠종금증권 박현철 연구원은 "위험투자 성향이 높고 단기에 높은 수익을 내겠다는 투자자는 랩이 맞지만, 장기적으로 꾸준한 성과를 내겠다는 투자자는 위험관리가 철저히 이뤄지고 운용 면에서도 투명한 펀드를 선택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