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노인정 할머니를 딸 방에 재운 '울 엄마'

나는 어릴 때부터 엄마에게 뭔가를 졸라본 적이 없다. 응석 같은 건 씨알도 안 먹히는 분위기였다. 동생이 '백 원만 주십사' 어리광을 딱 한 번 시도했다가 호되게 혼나는 걸 목격한 적은 있다. 그런 구두쇠 엄마가 동네 노인들에게는 인심을 물 쓰듯 했다. 여름이면 그늘의 노인을 찾아다니며 수박을 썰어 날랐고 겨울이면 떡을 쪄 노인정을 들락거렸다. 나는 심부름을 다니며 콩고물을 조금씩 얻어먹었지만 그래도 현금은 만져볼 수 없었다.

최악은 알코올 중독 할머니가 내 방에서 주무시는 거였다. 며느리에게 내쳐져 방황하고 있으면 엄마는 그 할머니를 내 방으로 인도했다. 아버지는 그런 엄마를 흐뭇하게 바라봤다. 하지만 조금만 더 흐뭇했다간 내가 병이 날 지경이었다. 술에 전 할머니와 나란히 자고 일어나면 종일 두통에 시달렸다. 중학교에 올라간 나는 더는 못 견디겠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그 후로 엄마는 그 할머니를 안방에서 재우셨다. 할머니의 며느리는 그 소문을 듣고선 더는 시어머니를 내쫓지 않았다. 그래도 할머니는 우리 집에 종종 들러 주머니가 불룩하도록 뭔가 얻어갔다. 나는 그것이 돈인 줄 알고 한동안 무척 서운해하며 세기의 비극을 집필하기도 했다. 안방에 잠입해 조사해본 후에야 그 불룩한 물건의 정체가 청포도맛 사탕이라는 걸 알았다. 성인이 된 후에 나는 엄마에게 따졌다. 왜 자식들에겐 사탕을 주지 않고 동네 노인들만 챙겼느냐는 물음에 그녀는 능글맞게 웃었다. 그저 외할머니의 삶을 자연스럽게 따라 했을 뿐이란다. 억울하면 그저 애를 낳아 고대로 복수하라는데, 내가 생각해봐도 과연 그 방법밖에 없을 것 같아 기분이 오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