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백조, 천사와 악마를 오가다… 흔들림없는 소녀, 정의를 향해 다가가다

27일(현지시각) 열리는 제83회 미국 아카데미 영화상 시상식을 앞두고 최우수 작품상 후보에 오른 영화 10편 중 2편이 24일 동시에 한국 관객들을 찾는다.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사이코 섹슈얼 스릴러 '블랙 스완(Black Swan)'과 코엔 형제의 정통 서부극 '더 브레이브(The Brave)'.

블랙 스완에서 예술을 향한 열정에 사로잡힌 프리마돈나 발레리나를 열연한 나탈리 포트만은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 유력 후보이고, 코엔 형제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이후 두 번째로 만든 서부극 더 브레이브는 10개 부문 후보작이다.

◆발레리나들의 심리 스릴러 '블랙 스완'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블랙 스완'은 뉴욕 발레계를 배경으로 성공과 완벽을 추구하는 발레리나들이 펼치는 심리 스릴러다. 선과 악의 극적 대결이란 차이콥스키의 발레극 '백조의 호수' 모티브를 영화의 뼈대로 삼고, 순수미의 극치인 발레에는 전혀 어울릴것 같지 않은 스릴러 기법으로 이야기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무엇보다 완벽한 연기를 하기 위해 자신을 버리는 발레리나의 복잡한 내면풍경을 소화한 주인공 나탈리 포트만의 연기가 돋보인다.

뉴욕 발레단에 소속된 니나(나탈리 포트만)는 모든 발레리나들이 부러워하는 '백조의 호수'의 프리 마돈나로 발탁된다. 하지만 이 작품의 프리마돈나는 순수함의 상징인 '백조(白鳥)'와 악의 상징인 '흑조(黑鳥·Black swan)'를 동시에 연기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발레리나에게 동경의 대상이자 난이도가 가장 높은 연기의 도전을 의미한다. 주연을 맡은 행복감은 잠시, 자신을 향한 주위의 시기와 질투, 기대감이 그녀를 압박한다.

니나를 더 극한 상태로 몰아넣는 것은 연약하고 순진한 백조를 많이 닮은 자신에게서는 보이지 않는, 사악하고 매혹적인 매력을 지닌 라이벌 릴리(밀라 쿠니스)의 등장이다. 뛰어난 기교로 아름다운 춤을 추는 니나와 달리 릴리는 즉흥적이고 관능적인 춤사위로 흑조 연기에 딱 들어맞는 형이다. 니나는 어렵게 얻은 프리마돈나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인다.

예술감독 토마스(뱅상 카셀)는 규격과 테크닉에 사로잡혀 있는 니나에게 "본성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라. 유혹하라"며 사정없이 몰아붙인다. 1인 2역을 완벽하게 소화하지 못하면 정상에서 추락할지도 모른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니나의 내면에 감춰져 있던 어두운 면이 서서히 노출되고, 성(性)에 대한 불온한 경험을 통해 순수한 여성에서 위험한 존재로 탈바꿈한다.

니나가 나풀나풀한 백조에서 관능적인 몸짓으로 상대방을 유혹하는 흑조로 변해가는 과정은 관객의 입장에서 보면 경탄할만한 아름다움이다. 그러나 실제 이를 연기하는 니나에게는 자신을 파멸로 몰아가는 독약이다. 결국 니나는 정식 공연 무대에서 자신의 파멸을 담보로 그토록 원하던 완벽한 아름다움을 완성한다.

니나가 1인 2역을 연기하는 과정에서 극과 극을 오가는 반전은 충격적이다. 백조에서 흑조로 변해가는 소름끼치는 과정은 순수와 관능, 아름다움과 광기, 선과 악이 하나로 융합되는 과정이자 넓게 해석하면 인간의 감춰진 양면성을 응시하는 가차없는 시선이기도 하다.

포트만은 정상급 발레리나역을 소화하기 위해 10개월 동안 하루 8시간 강도 높은 훈련으로 체중이 9㎏ 줄어들고 갈비뼈 부상을 입기도 했다. 어렸을 적 발레를 배운 게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영화 속 모든 발레리나들의 안무를 담당해 연습을 도와주던 벤자민 마일피드는 실제 뉴욕시 발레단 수석 무용수로, 이 영화에서 만난 포트만과 연인이 됐다.

13살 어린 나이에 '레옹'의 여주인공 마틸다로 데뷔한 뒤 2005년 '클로저'로 골든글러브 여우 조연상을 수상하면서 연기파 배우로 자리 잡은 포트만 연기의 정점(頂點)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청소년 관람불가.

[이것이 포인트!]

# 장면
니나가 프리마돈나 의상 치수를 잴 때 거울을 바라보니 또 다른 니나가 자신을 응시하는 순간.
# 대사
“우리를 유혹하라고. 왕자뿐 아니라 관객, 전 세계를! 거미가 거미줄로 먹이를 잡듯이!”(예술감독 토마스가 흑조를 연기하는 니나를 다그치며)
# 해외평
“강력하고, 관능적이며, 궁극적으로 굉장히 충격적인 작품.”(버라이어티지)
# 이런 분들에게 추천
인간은 ‘완벽’ ‘절대’ 경지에 도달하기 힘들지만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된다고 믿는 분.

◆코엔 형제의 권선징악 서부劇 '더 브레이브'

조엘과 이선 코엔(Coen) 형제가 만든 영화를 보면서 웃은 적은 많았지만 웃다가 운 건 이번이 처음이다.

'더 브레이브'는 '악인은 쫓아가는 자가 없어도 도망간다'(잠언 28장 1절)는 성경 구절로 시작한다. 정의로운 자가 악당에게 벌을 내리는 게 영화의 중심 내용인 정통 서부극이다.

코엔 형제는 전작(前作)들에서 단순하게 보이는 얘기도 복잡하게 꼬아버리고, 한 박자 빠르거나 느리게 유머를 구사했다. 이 재기 발랄한 형제는 부조리한 삶과 세상에다 나지막이 농담을 던지는 데 능하다. 그러나 이번 영화에서는 최소한의 유머와 위트만 간직한 채 묵직하고 우아하게 흘러가다 끝내 뭉클해진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1968년에 나온 찰스 포티스(Portis)의 소설 '트루 그릿(True Grit·진정한 용기)'을 충실히 각색했다는 데 있다. 소설이 나온 이듬해 이미 핸리 해서웨이(Hathaway)가 영화로 만들어 남자 주인공 존 웨인(Wayne)이 아카데미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선배 감독이 만든 1969년작 영화를 "원작 소설의 위트가 없다"고 평했던 코엔 형제는 자신들의 영화에서 소설의 흐름을 거의 그대로 따랐다. 원작에 나온 1800년대 후반 스타일의 쫄깃한 대화들도 영화에서 최대한 많이 살렸다. 한국 관객들로선 영어에 능통해야만 이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는 게 단점이긴 하다.

1870년대 서부 개척시대에 열네 살 소녀 매티 로즈(헤일리 스타인펠드)는 아버지를 죽인 악당 톰 채니(조시 브롤린)에게 복수하기 위해 연방보안관 루스터 카그번(제프 브리지스)을 고용한다. 채니를 잡으러 인디언 마을로 가는 길에 채니에게 걸린 현상금을 노리는 텍사스 특수경비대원 라 뷔프(맷 데이먼)까지 일행에 합류하게 된다. 자기네들끼리 티격태격하는 데 더 정신이 팔린 이들은 결국 채니를 찾아낸다.

카그번과 라 뷔프, 채니 등은 코엔 형제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어딘가 모자란 남자'들과 닮아 있다. 카그번과 라 뷔프가 서로 사격 솜씨를 자랑하려고 허공에다가 빵을 던지고 총질을 해대는 장면에서는 웃지 않을 수가 없다.

지난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제프 브리지스(Bridges)는 이 영화로 올해도 같은 부문 후보에 올랐다. 로즈를 연기한 헤일리 스타인펠드(Steinfeld·13)는 여우조연상 후보에 지명됐다. 그 나이에 어울리는 깜찍함을 찾기 어려운 대신 앙다문 입매무새는 결연함을, 단단한 두 눈은 영민함을 보여준다. 영화의 주요 배경인 황야와 볼품없는 숲은 투박하지만 지루하지 않다. 코엔 형제와 줄곧 함께해온 촬영감독 로저 디킨스(Deakins)는 광활한 공간을 찍는 데 일가견이 있는 게 분명하다.

코엔 형제의 골수팬들은 맥빠질지 모르지만 잘 만든 서부극을 기다려온 관객들에게는 반가운 영화다. 지금까지 나온 코엔 형제 영화 중 흥행에 가장 성공했다. 15세 이상 관람가.

[이것이 포인트!]

# 장면
카그번이 위독한 로즈를 안고서 말을 타고 별이 쏟아지는 황야를 달리는 광경.
# 대사
“세상에 공짜는 없다, 신의 은총 외에는.”(로즈가 과거의 복수극을 회상하며 하는 말)
# 해외평
“훌륭한 연출, 훌륭한 연기, 훌륭한 영화.”(롤링스톤지)
# 이런 분들에게 추천
자신을 괴롭히는 친구나 회사 상사를 ‘응징’하고 싶은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