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 피플] 은퇴 준비, 부동산보다 '월급봉투' 연금을 늘려라

"한국의 40대가 보유한 자산을 살펴보면 부동산이 약 80%, 주식 등 금융자산이 약 20%가량을 차지합니다. 선진국 국민의 보유자산 중 부동산이 30~40%를 차지하는 것에 비해 부동산 비중이 너무 높죠."

우재룡 삼성생명 은퇴연구소장은 은퇴 준비를 시작하는 40대에게 우선 보유한 자산 중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을 줄이라고 조언했다. 인구가 점차 감소하면서 새로운 주택에 대한 수요가 줄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그는 "인구 구조상 앞으로 부동산 가격이 대폭 올라가기는 어려우며, 오히려 일본처럼 부동산 가격이 폭락할 위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은퇴 후에는 부동산과 같은 자산 보다는 연금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은퇴한 사람은 10억원의 자산을 가지고 있어도 마음껏 쓸 수 없다. 앞으로 자신이 얼마나 더 오래 살지 모르는 상황에서 남아 있는 자산을 함부로 줄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은퇴 후 받는 연금은 자산을 줄일 필요 없이 돈을 쓸 수 있는 '월급봉투'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우 소장은 국내에 처음으로 적립식 펀드를 도입하고, 국내 최초의 펀드평가사인 한국펀드평가 대표를 맡은 금융전문가다. '금융전문가'에서 '은퇴전문가'로 변신한 그는 지난 10일 문을 연 삼성생명 은퇴연구소의 소장으로 취임했다. 그의 포부는 "사람들이 웃으면서 은퇴를 기다릴 수 있는 은퇴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현재 삼성생명 은퇴연구소는 40여명의 연구인력이 있다. 우 소장은 "올해 상반기 중에 국내외 은퇴 및 재무관리 전문가를 영입해 100명 규모로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나만의 은퇴 포트폴리오를 세워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은퇴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한다. 지루하고, 외롭고, 사회에 쓸모가 없는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 은퇴에 대한 이미지다. 거실 소파에 앉아 하루 종일 TV 리모컨을 붙들고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은퇴자가 할 수 있는 전부라고 생각하는 선입견이 있다.

우 소장은 "은퇴 설계를 위해선 '은퇴'의 개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며 "한국 사람들은 '퇴직'과 '은퇴'를 동일시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퇴직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다른 직장이나 자영업으로 옮겨 가는 것이라면, 은퇴는 더 이상의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현업에서 손을 뗀 상태를 뜻한다. 우 소장은 "퇴직은 직장은 그만뒀지만 계속 일해야 하는 상태일 수 있기 때문에 '퇴직'에 대해서는 '은퇴'보다 더 적극적인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성공적인 은퇴 계획에 대해 우 소장은 "직장에 다닐 때부터 퇴직 후 삶에 대한 '나만의 포트폴리오'를 미리 짜놓으라"고 조언했다. 이 포트폴리오는 자산(재무), 취미, 가족관계, 건강, 은퇴 후에 할 일 등 다섯 가지로 구성된다. 우 소장은 "재무 외에도 나머지 요소들이 적절한 균형을 이뤄야 퇴직 이후에도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며 "퇴직 후 모아놓은 돈이 많아도 불행할 수 있고, 적은 돈을 갖고도 가족들과 취미생활을 함께 하면서 즐겁게 지낼 수 있다"고 했다.

◆가장 좋은 은퇴준비는 '은퇴하지 않는 것'

우 소장이 말하는 은퇴 준비는 크게 3단계의 주기에 따라 구성된다. 첫 번째 단계는 40대 이전까지 은퇴자산을 축적하는 시기이다. 두 번째 단계는 은퇴 시점의 약 5년 전인 50대에서 60대 초반까지로, 집을 바꾸거나 은퇴 후 직업을 준비하는 등 은퇴를 본격적으로 준비하는 시기다. 마지막 단계는 완전히 은퇴하고 나서 미리 준비해두었던 두 번째 삶을 시작하는 시기다.

우 소장은 은퇴 후에도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계속 활동하는 '활동적(active)인 은퇴'를 강조했다. 이전까지는 은퇴하면 완전히 사회 밖으로 떠나서 휴식을 취하는 데 중점을 뒀다면 이제는 개념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1960년대에 만들어진 미국 최초의 리조트형 실버타운 '선시티'의 예를 들었다. 미국 애리조나주에 위치한 선시티는 총주거인원이 6만여명인 시니어(senior) 타운으로 55세 이상만 입주할 수 있게 돼 있고 쾌적한 환경을 갖추고 있다. 자연환경이 뛰어난 곳에 은퇴자들을 위한 타운을 조성하고 모여 살도록 하는 모델인 셈이다. 그러나 선시티는 현재 미국에서 인기가 없어졌다고 우 소장은 전했다.

우 소장은 "1960년대 은퇴자들은 은퇴 후 약 10년 정도밖에 살지 못했기 때문에 공기 좋은 곳에서 여유롭게 휴식을 취하는 삶을 중요시했다"며 "그러나 의학발달로 100살가량 살 수 있는 현재는 사회와 격리되는 은퇴 모델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우 소장은 "가장 좋은 은퇴는 은퇴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퇴직 후에는 그동안 바쁜 일 때문에 즐기지 못했던 취미를 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취미가 반드시 그럴듯한 필요는 없다. 만약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직장에 다닐 때부터 맥주동아리에 가입해 맥주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쌓고, 맥주를 만드는 방법 등을 배워 놓으면 된다.

그는 "'취미'가 곧 '소득'이 될 수 있도록 10년 전부터 다양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각광받는 시니어 직업으로 청소년 게임중독 상담역, 호스피스, 유적지 가이드 등을 추천했다. 많은 체력을 소모하지 않으면서도 그동안 살아오면서 쌓아놓은 지식을 활용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