섞어야 멋있다… 서울에도 이런 밤

더 윈에는 심씨가 인테리어를 하며 남의 집을 위해 쌓았던 노하우가 총집약돼 있다. 베개부터 커피잔까지 모든 가구와 소품을 직접 골랐다. 숙박시설이기 전에 인테리어 전시장 같은 느낌이다.

5층짜리 회색 건물의 1층으로 들어서면 카페가 나타난다. 체크인 겸 회합을 위한 이 공간은 홍대 앞에서 볼 수 있는 모던한 카페 같다. 대리석 잔뜩 깔린 특급 호텔의 로비보다는 우리의 일상과 가까운 풍경이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은 늘어나는데 그들이 고를 수 있는 숙박시설의 다양성은 '글로벌 코리아'의 구호가 무색할 정도다. 속만 보면 뉴욕인지 서울인지 알 수 없는 특색 없는 호텔 아니면 러브호텔이 고작이다. 일본의 료칸(旅館)처럼 머무는 것만으로도 그 나라의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개성 있는 숙박 형태란 기대하기 어렵다. 카림 라시드가 디자인한 그리스의 세미라미스, 필립 스탁이 디자인한 런던의 샌더슨호텔처럼 독특한 디자인으로 호텔 자체가 관광 명소가 된 부티크 호텔이 늘고 있지만 그 역시 먼 나라 이야기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 지하철 합정역 2번 출구 근처에 있는 게스트하우스 '더 윈(The win)'은 이런 우리 숙박시설의 문제를 푸는 데 작은 대안(代案)을 제시한다. 이곳은 인테리어디자이너 심정주(58)씨가 지난해 10월 문을 연 객실 6개짜리 아담한 게스트하우스. 심씨는 1970~80년대 미국, 영국, 독일 등 해외 생활을 하다가 80년대 초부터 30여년간 성북동·청담동 일대의 고급 주택 인테리어와 한옥 개조를 해왔다. 그런 그가 난데없이 숙박업으로 전업(轉業)했다. "환갑을 앞두고 보니 내게 있는 재주로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들더라. 내 인테리어 감각을 담은 작은 여관으로 한국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6개의 방은 저마다 다른 느낌으로 디자인했다. 401호 복층 스위트룸은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담았다. 빌트인 가구와 슬라이딩 가림막으로 심플하게 꾸민 실내에서 문을 열고 나가면 그곳에 '한국'이 있다. 바람결에 살랑대는 풍경, 가지런히 놓인 검정 고무신, 한옥에서 뗀 구들장, 자그마한 동자상…. 상업시설이 어지럽게 들어선 서울 도심 속에서 전통이 숨 쉰다.

그 옆 402호에는 아기자기한 인형들이 소복한 다락방이 있다. 아이를 동반하는 투숙객을 위한 배려이면서 일상에 지친 어른들이 잠시 동심(童心)으로 돌아갈 수 있는, 치유의 공간이다. 아래층엔 온돌방이 있다. 장안평 시장에서 발견한 한옥 문짝으로 만든 탁자, 옛날 자수를 넣은 전통 베개 등 소품 하나까지 한국의 숨결을 담았다. 무조건 고급만 고집하지는 않았다. 최대한 비용을 아끼기 위해 저렴한 이케아(IKEA) 가구를 활용했고, 이전 인테리어일을 할 때 고객이 잘못 주문해 버린 가구를 손질해 수납장으로 만들었다. 친구에게 선물받은 그림, 사무실에서 쓰던 탁자도 장식으로 썼다.

옥상엔 토종닭이 산다. 닭이 낳은 신선한 달걀로 매일 아침 투숙객에게 프라이를 해준다. 해외여행을 하며 경험했던 작은 B&B(숙박과 아침을 제공하는 형태의 숙소)의 감성을 담은 것이다. 심씨는 말한다. "특급 호텔을 나서면 택시를 타고 목적지로 이동해야 하지만 이곳에선 문을 열면 일상이 숨 쉬는 골목길을 마주하게 되지요. 우리 게스트하우스가 소소한 한국인의 삶과 디자인을 외국에 알리는 작은 공간이 됐으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