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계에 '안무가 출신 연출가' 바람

국내 뮤지컬계에 '안무가 출신 연출가' 바람이 불고 있다.

연극 연출가나 배우 출신 연출가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뮤지컬계에서 안무가들이 속속 연출에 도전하고 있는 것. '올댓 재즈'의 서병구, '웰컴 투 마이 월드'의 오재익, '젊음의 행진'의 강옥순 감독 등이 연출가로 변신했거나 할 예정이다.

안무가에서 본격적으로 연출에 처음 도전한 주인공은 서병구 감독이다. 90년대 초반 뮤지컬 안무와 인연을 맺은 그는 '명성황후' '드라큘라'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겨울나그네' 등 수많은 작품의 안무를 맡아온 국내 대표적인 뮤지컬 안무가이다. 지난해 2월 브로드웨이의 전설적인 안무, 연출가인 밥 포시의 춤세계를 모티브로 한 '올 댓 재즈'로 연출가로 데뷔한 뒤 올해 리바이벌 공연을 용산아트홀에서 선보이고 있다.

배우에서 출발해 안무가를 거쳐 연출가로 변신한 오재익 감독 역시 20년 경력의 베테랑이다. 지난해 5월 창작뮤지컬 '웰컴 투 마이 월드'로 연출 신고식을 했고, 최근 리바이벌 무대를 신촌 더 스테이지에서 마쳤다. 미스터리 코믹 스릴러라는 독특한 장르를 자신만의 컬러로 소극장 무대에서 구현했다는 평을 들었다.

여류 안무가인 강옥순 감독은 연출 데뷔를 눈앞에 두고 있다. 오는 4월 개막하는 창작뮤지컬 '젊음의 행진'에서 처음으로 연출 지휘봉을 잡는다. 역시 배우를 거쳐 지난 1998년 넌버벌퍼포먼스 '난타' 때부터 안무를 시작했다. 강 감독은 서병구 감독의 제자이기도 하다. 이들 세 명은 10년 이상 뮤지컬계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안무가에서 연출가로의 변신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김종헌 교수(성신여대 문화예술경영학과)는 "브로드웨이의 경우 전체 연출가의 3분의 1이상이 안무가 출신"이라며 "안무 역시 드라마를 통해 전개되는 만큼 연출을 겸하면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밥 포시를 비롯해 제롬 로빈스, 마이클 베넷 등 브로드웨이의 전설적인 연출가들 가운데 안무가들이 많다. 지난해 서울에서도 화제를 모은 '컨택트'의 수잔 스트로먼 역시 안무가 출신이다.

서병구 연출의 '올댓 재즈'를 제작한 팍스컬쳐 김용현 대표도 "전체적인 '그림'을 파악하는 능력이 좋기 때문에 10여년 전부터 안무가들이 연출에 도전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뮤지컬계에 많았다"고 말한다.

안무가들의 도전욕구도 중요한 요인이다. 오재익 감독은 "안무를 하다보면 연출가와 부딪힐 때가 많아 언젠가 연출을 겸하겠다는 꿈을 키워왔다"며 "작품의 스타일을 만들어내는 힘이 안무가들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강옥순 감독 역시 "배우들과의 소통, 무대에서의 동선 정리 등 안무가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이 많다"며 "열심히 노력해서 연출도 잘하는 안무가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안무가 출신이라고 해서 무조건 다 되는 것은 아니다. 김용현 대표는 "무엇보다 작품의 성격과 맞아야한다. 안무가 출신들은 춤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작품에서 역량을 발휘하고, 드라마가 강한 작품은 역시 연극연출 출신들이 맡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안무가 출신 연출가들의 등장은 국내 뮤지컬계가 그만큼 성장했다는 방증이다. 김종헌 교수는 "작품과 마찬가지로 연출도 다양성이 생명"이라며 "다양한 미적 감각을 지닌 연출가들이 등장하는 촉매제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형중 기자 telos21@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