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청중들을 또렷이 기억합니다. 1984년 영국 로열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996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로열콘서트헤보 오케스트라와 함께 내한했을 때 알아봤어요. (한국인들은) 우리 이탈리아인처럼 뜨거운 기질이 있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음악을 듣더군요."
지난 2005년 샤이가 16년간 이끌던 로열콘서트헤보 오케스트라를 떠났을 때 세간의 관심이 쏟아졌다. 남들은 애타게 갈망하는 자리를 자발적으로 용퇴한 지휘자. 그는 대신 옛 동독의 심장 라이프치히를 택했다. "1986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LGO를 처음 객원지휘했어요. R 슈트라우스의 '돈 후안'을 연주했는데 내가 지휘를 시작하자마자 엄청난 사운드를 뿜어냈죠. 오케스트라의 나이가 바로 그들이 내는 소리를 말해줍니다. 268년 전통을 자랑하는 LGO의 뿌리는 바흐와 베토벤, 브람스, 멘델스존, 슈만 같은 정통 독일 레퍼토리에 있지요."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는 1743년 라이프치히의 상인들이 게반트하우스(직물공장)에서 연주회를 연 것을 계기로 창단됐다. 당시 궁정에 전속으로 딸린 오케스트라들의 연주는 왕족이나 귀족만 들을 수 있었다. LGO의 출범으로 누구나 입장료만 내면 오케스트라 연주를 들을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샤이는 악단 고유의 독일 전통에 색채적 감각을 결합해 제2의 황금기를 열었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당신의 이탈리아적 기질이 오케스트라와 상충되는 면은 없느냐"고 물었더니 "절대! 내가 가진 불 같은 기질이 잘 훈련된 게르만의 전통과 만나서 활기를 띠게 됐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샤이는 15세에 지휘자로 데뷔했다. 아버지는 이탈리아의 저명한 음악학자이자 작곡가였던 루치아노 샤이. 아버지로부터 음악의 기초를 배웠다. "다섯 살 때 처음 아버지를 따라 음악회에 갔어요. 여러 악기가 합해서 나오는 하모니, 지휘봉을 흔드는 사람…. 한마디로 충격이었죠."
하지만 아버지 눈에는 샤이의 재능이 탐탁지 않았나 보다. 샤이는 아버지의 권유로 로마에 있는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지휘자의 길이 얼마나 험난한지 아셨던 거죠. 중간 정도 할 거면 아예 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하지만 그는 결국 1년 만에 음악으로 진로를 바꾼다. 스승 프랑코 페라라는 10대의 샤이를 두고 '내 생애 만난 최고의 천재'라고 극찬했다.
샤이는 다음 달 7~8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 오른다. 7일에는 드보르자크 교향곡 7번과 드보르자크 바이올린협주곡, 8일에는 연주시간 80분의 브루크너 교향곡 8번 한 곡을 연주한다. 그는 브루크너 교향곡 전곡을 녹음한 첫 이탈리아 지휘자다. "특히 8번 교향곡은 브루크너가 이전에 작곡한 모든 곡의 아이디어가 집약된 작품이죠. 3악장이 이 곡의 심장인데 30분이 넘어요. 굉장히 고통스러우면서 드라마틱한 하나의 이야기가 흐르죠. 한국 청중들이 3악장의 위대한 감성을 느낄 거라 기대합니다."
이날 밤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에서 열린 연주회에서 샤이는 7일 서울에서 들려줄 드보르자크 교향곡 7번을 지휘했다. 무대 위의 그는 양손뿐 아니라 두 발까지 움직이는 열정적 지휘자였다. 4악장 피날레, 모든 관현악기가 장대한 주제 선율을 연주하며 곡이 끝나고 객석의 환호가 터져 나오자 아직 음악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거장은 잠시 숨을 고른 뒤 뒤돌아 인사했다. 5번의 커튼콜이 이어지는 동안 박수 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내한공연. 3월 7~8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 전당. (02)599-57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