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덩치 키운 'No.2'의 반란… 대그룹 계열사 지각변동

SK텔레콤 직원들은 요즘 풀이 죽어 있다. 주가 탓이다. A차장은 2007년 말 회사 주식을 한 주당 약 16만원을 주고 90주를 받았다. 당시 주가는 22만~23만원이어서 큰 이익을 기대했다. 그러나 4년이 지난 23일 주가는 15만7500원. 구입가보다 오히려 손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SK텔레콤 주식은 한때 420만원(액면가 분할 전 환산가격)에 달했던 '황제주'로 통했지만, 이제는 사원들에게 우리사주로 준 가격에도 밑도는 처지가 됐다.

SK그룹의 같은 계열사인 SK이노베이션 직원들은 사정이 정반대다. 직원 B씨는 작년 10월 상여금으로 받은 회사 주식이 5개월 만에 25%가 올라 쾌재를 부른다. 작년의 성과급도 올 초에 기본급의 300~600%씩 받았다.

두 회사의 상반된 처지는 시가총액(주가와 주식 수를 곱한 것)에서 잘 나타난다. SK그룹에서 '부동의 1위' 기업이었던 SK텔레콤은 작년 9월 처음으로 SK이노베이션(옛 SK에너지)에 1위 자리를 내줬다. 10월 이후에는 시가총액 역전이 완전히 고착됐다.

주력 계열사의 변화는 SK그룹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23일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한 대규모기업집단 상위 20개 그룹의 계열사를 분석한 결과, 지난 1년 사이 매출·이익·자산·시가총액에서 1~2위 간 변화가 있는 그룹이 7개에 달했다. 35%에 해당하는 수치다.

◆중국, 석유화학이 큰 원인

재계 3·4·5위인 SK·LG·롯데그룹은 모두 화학 관련 계열사의 약진으로 변화가 있었다.

SK그룹의 경우 SK텔레콤의 주가는 하락한 반면, SK이노베이션의 주가는 상승했다. SK텔레콤의 영업이익은 수년째 별 변화가 없다. 정부의 요금 규제 압박도 강하게 받고 있다. 통신산업이 성장의 정체를 맞고 있는 것도 악재다. 반대로 SK이노베이션은 실적이 들쭉날쭉해도 지난해 영업이익이 SK텔레콤에 근접했다.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석유제품을 많이 팔았다. 태양전지 같은 미래 산업에 뛰어들고 있어, 성장 가능성도 크다는 기대를 받고 있다.

LG그룹의 경우,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한 직후인 2004년 이후 처음으로 LG화학이 지난해 그룹 내 시가총액 1위 자리를 LG전자로부터 빼앗았다. 2004년 LG화학의 영업이익은 LG전자보다 훨씬 적었으나 작년엔 역전을 넘어 2조6000억원 차이까지 벌렸다.

LG화학은 중국과 아시아의 화학제품 수요가 유지되면서 이익이 커졌다. 전기차용 배터리, IT(정보통신) 제품에 들어가는 소재도 주요한 수입원이 됐다. 반면 LG전자는 스마트폰 경쟁에서 밀려 실적이 좋지 않았다.

롯데그룹은 호남석유화학의 약진이 '유통·식음료 그룹'이라는 그룹 정체성 자체를 바꾸고 있다. 1위 계열사인 롯데쇼핑과 2위인 호남석유화학의 작년 영업이익은 각각 1조1470억원 대 9030억원으로 박빙 수준이 됐다. 시가총액 차이도 2004년 9조원에서 23일엔 1조3000억원으로 줄었다. 호남석유화학도 중국과 아시아의 화학 수요가 높은 덕을 보고 있다.

◆인수·합병으로 덩치 키워

재계 18위인 CJ그룹은 엔터테인먼트·미디어 관련 6개사를 합쳐 오는 3월 CJ E&M을 탄생시킬 예정이다. 현재 자산기준으로 CJ그룹의 1위 계열사는 5조원의 CJ제일제당이고 2위가 9000억원인 CJ오쇼핑이다. 새로 탄생할 CJ E&M은 자산이 1조8000억원으로 늘어나며 일거에 그룹 내 2위 계열사로 올라선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1위 계열사가 떨어져 나갔다. 2006년 인수한 대우건설이 가장 큰 계열사였으나, 작년에 그룹 전체가 유동성 위기에 몰리면서 다시 매각했다.

포스코는 지난해 인수한 대우인터내셔널이 곧바로 2위 계열사 자리를 차지했다. 2위였던 포스코건설의 작년 매출은 6조2000억원이었고, 대우인터내셔널은 15조6700억원이었다.

KT도 BC카드를 인수함으로써 여러 사업군을 가진 그룹이 됐다. 2009년 매출이 3조2000억원인 BC카드는 작년 매출 20조2335억원인 KT에 이어 2위 계열사가 됐다.

계열사의 위상 변화는 산업 흐름의 변화를 반영한다. LG경제연구원 김형주 연구위원은 "국내의 통신업이나 식품업은 성장이 정체돼 있지만 화학은 아시아 시장이 계속 성장하고 있고 전지나 IT소재 등으로 변화할 여지도 많다"며 "세계 경영 환경이 변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은 특정 산업에 의존하기보다는 산업을 다양화하려는 노력을 하기 마련"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