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 달도 못 버틸 거라 수근… 38년을 항구로 출근했네요"

인천항이 한눈에 보이는 중구 북성동 해상교통관제센터 6층. 해양교통관제사 고애순(60)씨가 입항하는 배들의 정박 순서와 위치를 정해주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해양교통관제사인 그가 28일 정년퇴직한다. 해양교통관제사는 항구를 드나드는 선박에 항로·해저지형·날씨 정보 등을 주는 '바다의 교통경찰'이다.

그는 "남자들만 있는 곳에 왜 가려 하느냐"는 부모와 주변 반대를 무릅쓰고 1973년 인천해운국에 취직했다. 통신기사 2급 자격증을 딴 뒤였다.

"모두들 석 달 견디기도 힘들 거라고 했어요. 여성이 아니라, 능력으로 인정받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어느새 38년이나 지났네요."

쉽진 않았다고 했다. 초년시절 선박회사와 연락할 때면 "아가씨 말고 관제사를 바꾸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연중무휴 체제여서 명절이나 집안 경조사도 놓치기 일쑤였다. 무엇보다 남자들이'동료'로 대해주지 않아 힘들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여성이 배에 오르는 것도 꺼렸잖아요. 배에 올라 경력과 실력을 쌓아야 제대로 관제사 역할을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잠자리에서도 선박의 구조와 생김새, 그리고 인천항 구석구석까지 그리곤 했지요." 이제는 인천항을 오가는 배 수백 척의 이름·특징·고유번호까지 외운다. 이런 노력 덕일까. '머지않아 떠날 사람' 취급하던 동료들도 마음을 열었다.

1996년 시련이 닥쳤다. 상선 두 척이 그의 지시를 받고 운항하다가 부딪쳤다. 해양경찰서와 해난심판위원회에 여러 날 출석해 설명하느라 진땀을 뺐다. 잠도 오지 않고, 밥도 넘어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여태껏 온 길이 아까웠습니다. 무엇보다도 '넌 최선을 다했다'는 동료들 격려에 용기를 얻었어요."

인천 인성여고 시절, 그는 교사를 꿈꾸다가 진로를 바꿨다. '여성시대가 오니 남성독점 분야에 과감히 도전하라'는 교장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다.

"부모님을 설득해 대경전문대 통신공학과에 갔어요. 전교에서 여학생은 혼자여서, 화장실에만 가도 모두 쳐다볼 정도였죠. 통신기사 시험을 준비하려고 집에서 모르스 부호를 연습하다가 간첩으로 오인받은 적도 있어요."

그는 "인천 토박이가 인천항을 바라보고 수십 년 일한 것만도 영광"이라며 "아직도 많은 '남성 영역'에 젊은 여성들이 더 과감히 도전하기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