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민의 평점 따윈 필요없어] 영화 '바빌론의 아들'… 상처의 땅… 비참한 현실

'아이를 잃는 것은 영혼을 잃는 것과 같다'영화 속 아들의 유골 앞에서 통곡하던 이라크 여인들이 부르던 노래의 가사다. '바빌론의 아들'은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 헤매는, 가슴을 도려낸 자리에 사막의 모래가 켜켜이 쌓이는 듯 아픈 영화다.

12년 전, 사담 후세인 정권 때 끌려가 생사를 모르던 아들이 나시리아 감옥에 전쟁 포로로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고 쿠르드족 노파가 여행길에 나선다. 아랍어를 못하는 그녀의 입이 되어줄 사람은 태어나서 한 번도 아버지를 본 적 없는 12살 손자 아흐메드. 사실 아흐메드는 아버지를 만나는 것 말고도 '바빌론의 공중정원'을 보겠다는 천진한 꿈을 갖고 있다. '바빌론의 공중정원'은 신바빌로니아의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나무가 많은 곳에서 온 왕비를 위해 지었다는 사막 위의 기적으로 아흐메드는 그 유적을 볼 기대에 부풀어 있다. 그러나 아흐메드가 목격하게 되는 것은 기적이 아닌 전쟁의 상흔이 짙은 이라크의 현실이다.

테러의 위험을 헤치고 겨우 찾아간 감옥에 아버지는 없고, 이제 그들은 매립지에 묻혀 있는 수많은 유골들 가운데에서 아버지를 찾아야 한다. 다행히 이 이방인 노파와 소년을 딱하게 여긴 청년의 도움으로 다시 길을 나서기는 하는데, 이 선량한 청년이 과거 후세인 정권 당시 쿠르드족 대학살인 '안팔 작전'에 강제 동원돼 여자와 아이들을 죽였던 사실을 힘겹게 고백한다. 할머니는 아직 희망을 잃지 않은 이라크의 '내일'인 아흐메드 앞에서 청년을 용서한다. 이제 할머니와 손자에게 남은 일은 사막 아래 파묻힌, 한때 누군가의 아들이고 아버지고 친구였던 이름도 없는 유골들 앞에서 그리운 이름을 부르며 눈물을 닦는 것뿐이다.

영화의 마지막, 아버지를 찾지 못한 아흐메드가 바빌론의 유적지를 지나며 아버지의 유품인 피리를 부는 장면에서 눈물을 흘린다면 아마도 그것은 사막의 바람처럼 짤지 모른다. 이제 소년의 마음속 바빌론은 더 이상 전설의 유적이 아닌 100만명이 실종되고 25만구의 시신이 묻힌 상처의 땅일 뿐이다. 그 비통한 현실을 묵묵히 그려낸 '바빌론의 아들'을 보고 전쟁의 참상을 운운하는 일조차 실은 송구스럽다. 영화에서 할머니를 연기한 노파가 현실에서도 남편과 아들을 잃었다 하니, 그 깊은 주름에 스민 눈물을 쉽게 잊지는 못할 것 같다.

※바빌론의 아들=감독 모하메드 알 다라지, 출연=샤자다 후세인·야서 탤리브, 24일 개봉, 전체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