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는 먼저, 한국은 뒤늦게… 마지못한 수입차 리콜

수입자동차 업체들이 해외에서는 리콜(제작사의 결함 공개 및 무상수리 조치)을 발표해 놓고도 한국에서는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야 실시하는 '늑장 리콜' 현상이 심각하다. 발표 때 "시장규모가 작다"며 한국시장을 대상에서 빼버리는 경우도 있다. 해당 업체의 국내 법인이 "판매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며 해외 리콜 사실을 뒤늦게 당국에 알리기도 한다. 지난해 국내 판매된 수입차는 9만562대. 전년보다 49%나 성장했다. 시장 점유율도 8%에 이른다. 차 파는 데만 열중하고 안전관리는 외면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해외 리콜 발표 뒤 1년 넘어서 국내 리콜

지난달 25일 도요타는 바닥매트가 가속페달에 걸려 차가 폭주(暴走)할 수 있다는 이유로 미국에서 217만대를 추가 리콜했다. 미국의 대상차종 가운데 SUV인 도요타 라브포(RAV4)와 렉서스 RX330 등은 국내에서도 판매됐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아직 어떤 조치도 나오지 않고 있다.

푸조를 국내 수입하는 한불모터스는 지난달 27일 307·308·407 등 7개 차종 2962대를 브레이크 결함으로 리콜했다. 푸조 본사의 유럽 발표보다 한 달 후에 이뤄진 조치였다. 국내 소비자들은 치명적인 브레이크 결함 위험을 가진 차량을 한 달이나 몰고 다닌 것이다.

지난달 20일 GM코리아가 발표한 캐딜락 CTS 560대의 브레이크 오일 누유에 따른 리콜은 미국에서는 작년 3월 발표된 것이다. 한국은 1년이나 늦었다. GM코리아 관계자는 "미국에서도 추운 지역에서만 리콜을 실시해 국내에는 해당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해명했다. 포드도 익스플로러 등 1128대를 브레이크오일이 샐 수 있다는 이유로 작년 6월 한국에서 리콜했는데, 이 역시 미국 내 발표 시점보다 8개월이나 늦은 것이다.

한국 소비자를 무시하기는 국내 업체도 예외가 아니다. 현대차는 작년 2월 쏘나타의 도어 열림 결함으로 한국에서 4만6000대, 미국에서 1300대를 리콜했다. 현대차는 이 문제를 2009년 9월 한국시장 출시 한 달 뒤부터 알고 있었지만 안전에 치명적이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후 반년 뒤 미국에서 이 문제가 불거졌다. 그러자 현대차는 곧바로 한국과 미국 동시 리콜을 발표했다.

◆리콜 조사·감독기관 없는 것도 문제

수입차 업체들이 해외에서 먼저 리콜하고 한국시장은 나중에 하는 이유는 뭘까. 업체들 해명은 이렇다. 한 일본 자동차업체 담당자는 "본사 지침을 기다려야 하고, 한국에서 팔린 대상 차종을 조사하는 데도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국토해양부 자동차정책과 박광열 과장은 "국내 수입차 업체들은 회사 인력 대부분이 영업·마케팅으로, 안전 부문의 관리인력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정부의 허술한 제도가 '늑장 리콜' 방치 원인이라는 지적도 있다. 국내에는 자동차의 결함 가능성에 대해 적극적인 조사·감독을 하는 '컨트롤타워'가 없다. 미국은 1960년대 후반부터 교통사고 조사데이터를 수집해 차량 결함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찾아낸다.

국토부는 업체로부터 통보받은 뒤 발표하는 역할에 그치고 있다. 결함 원인을 찾아낼 수 있는 국토부 산하 자동차성능연구소는 자체 조사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