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상자 안에서 2시간 버텨야 예술을 만난다

5년째 전 세계를 순회 중인 비디오 아트 전시가 서울에 도착했다. 5월 1일까지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는 'H Box'. 'H Box'는 모바일 상영관의 이름으로 지난 2007년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첫 전시를 가진 후 스페인·영국·미국·멕시코·일본 등을 거치며 세계 각국 비디오 아티스트 8명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참여 작가 중 유일한 한국인인 남화연은 '당신의 유령을 해치지 마시오'라는 16분40초짜리 작품을 내놓았다. 무성한 갈대밭, 파도가 몰아치는 바닷가 등을 배경으로 절을 하거나 춤을 추는 다섯 여인의 독백을 통해 타인의 경험을 곱씹어 보도록 했다.

중국 작가 왕 지안웨이의 작품 '제로'는 상영시간 11분. 고층빌딩에서 한 남자가 거꾸로 떨어지면서 창문을 통해 빌딩 각층의 내부를 엿보는 설정이다. 작가는 층마다 급속히 달라지는 풍경을 통해 급변하는 중국 사회를 반영하려 시도했다.

허니콤 알루미늄과 플렉시 글라스로 제작된 'H Box'는 가로 7m, 세로 6.5m, 높이 2.8m, 부피 68㎥의 입체조형물. 성인 10명이 가까스로 붙어 앉을 만큼 좁은 공간에서 1시간50분에 걸쳐 상영물 8편을 모두 보려면 웬만큼 수준 높은 관객이 아니고서야 어려운 예술영화를 관람할 때 이상의 인내심이 필요할 것 같다. 다만 비디오 아트에 전혀 관심이 없는 이들마저 솔깃하게 할 만한 요소가 하나 있으니 프랑스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가 이 전시를 후원한다는 사실이다. '에르메스니까'라며 참을성 있게 끝까지 전시를 볼 것인지 '어렵다'며 중도에 일어설지는 선택의 문제. (02) 733-89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