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에 비친 '모던 조선'] [6] 전세대란에 ‘세입자 동맹’ 결성해 집세 인하 운동

"화려한 도회 경성의 표면은 이삼층 양옥이 나날이 늘어가되 의지할 집이 없어 헤매는 무리도 그와 비례해 늘어가고 있다. 차가난(借家難·전·월세난)은 도처에서 부르짖게 되며 이 약점을 이용하여 집주인은 가임(家賃·월세)을 조금도 내리지 않는 형편인데…."

80년 전인 1931년 9월 21일자 조선일보 사회면에도 전·월세 대란 기사가 크게 보도됐다. 1930년 무렵, 경성 등 도시의 주택난은 상상 이상으로 심각했다. 급격한 도시화와 함께 땅을 빼앗긴 농민, 지주의 수탈을 못 견딘 소작농, 심지어 독립군의 군자금 요구를 피하려는 시골 부자들까지 도시로 몰려들었다. 자연 집값은 치솟고, 이는 전·월세 값 폭등으로 이어졌다.

도시화와 함께 번듯한 새 건물이 들어서면 낡은 주택들은 무더기로 헐려나갔다. 가구주가 세입자가 되고, 세를 감당 못하는 서민들은 경성 밖으로 쫓겨나거나 청계천 등지에서 움막을 짓고 사는 토막민(土幕民)이 되어야 했다.

1929년 12월 1일자 조선일보는 "경성의 주택 수는 7만9192호, 그중 가옥세를 무는 납세자는 겨우 2만5806명으로 전세 혹은 사글세로 들어 있는 호주 수가 5만3386명이며 이 중 조선인 호주 수가 3만1329명에 이른다. 대개 1호에 4.5명씩 산다고 한다면 경성시내의 조선인 차가인 수는 14만980명"이라고 보도했다. 1929년 당시 경성 인구가 30만이었으니 인구의 절반이 제 집 없이 떠돈 셈이다. 당연한 결과로 집주인과 세입자 간의 분쟁이 끊이질 않았다. 월세를 제때 내지 못한다고 엄동설한에 방 구들장을 뜯어간 주인의 처사가 비인도적이라고 꾸짖는 기사도 보인다.(조선일보 1928년 12월 9일자)

세입자들도 반격에 나섰다. 1929년 11월 초 평양의 관리 회사원 등 월급쟁이들이 '차가인 동맹'을 발족시키고 집세 인하 운동에 착수했다. 그 내용을 알리는 조선일보 기사는 '대도시의 가임(家賃)인하운동/ 각처 도시에서 맹렬히 운동'이라는 제목으로 "봉급이 집세보다 적은 자가 많음으로 그 생활이 참으로 고통된다"고 보도했다.(1929년 11월 18일자) 경성 차가인 동맹은 비행기를 동원, 집세 인하 선전 '삐라'를 배포하고 시위를 벌이려다 경찰의 제지를 받기도 했다.

집세 인하 운동은 순식간에 전국으로 번졌고 곳곳에서 결실을 맺었다. 원산 차가인 조합이 집주인들을 일일이 찾아다닌 끝에 집세를 4~5할까지 인하하는 데 성공하자 조선일보는 그 내용과 함께 집세를 '내려준' 집주인 명단을 싣기도 했다.(1931년 3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