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 팔순잔치 간 게 어제 같은데 내 나이가 八旬이라니, 시간 참…"

"1957년인가 등단한 지 얼마 안 됐을 땝니다. 미당(서정주)을 처음 만나 그분 시를 세 편 외웠는데, 갑자기 '니가 내 아들이구나' 하시며 입을 맞추시는 거예요. (껄껄 웃으며) 그게 내 첫 키스였죠. 미당과 (김)동리 선생 팔순잔치 갔던 게 엊그제 같은데…. 선배들은 다 돌아가시고, 이제 내가 제일 늙은이가 됐네요. 시간 참…."

올해 팔순(八旬)을 맞은 원로 소설가 이호철<사진>씨가 새 소설집 '가는 세월과 흐르는 사람들'(글누림 출간)을 펴내고 3일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새 소설집은 중국·러시아 등 해외동포들의 신산(辛酸) 어린 삶의 이야기. 작가가 TV 프로그램에 출연할 때 알게 된 절절한 사연들을 소설 형식으로 녹여 냈다. 그는 "미학적·문학적 부분을 조금 희생하더라도 직접 경험한 이야기들을 전달할 수 있어 좋았다"고 했다.

1932년 함경도 원산에서 태어난 작가는 6·25 때 혈혈단신 월남했다. 1955년 단편소설 '탈향'으로 등단한 뒤 1962년 '닳아지는 살들'로 동인문학상을 받았다. '서울은 만원이다' '남녘사람 북녘사람' 등 월남한 인생의 애환과 비극을 그려낸 작품들을 통해 '분단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1974년에는 문인간첩단 사건으로 몇 달 동안이지만 옥고도 치렀다. 그는 "감옥에 들어간 게 엊그제 같은데 순식간에 36년이 흘렀다"며 상념에 잠겼다. 은빛 턱수염이 가득한 작가는 건강 비결로 등산을 꼽았다. 전에는 서울 불광동 집 근처 북한산을 올랐고, 요즘도 틈날 때마다 둘레길을 걷는다고 했다.

오는 13일은 작가의 80회 생일. 이를 기념해 제자들 주도로 11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이호철선생 팔순기념식'과 '(사)이호철문학재단(이사장 이근배)' 발족식을 갖는다. 시인 이근배씨의 축시,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의 축사와 기념문집 헌정도 예정돼 있다. '큰산과 나'로 제목을 지은 문집에는 최일남·한말숙·이어령·신봉승·한승헌·정수일·박석무·송영·정호웅·윤영수 등 문인 87명의 글을 모았고, 병중의 소설가 김승옥 선생도 원고를 보내왔다고 한다. 그는 "여든 됐다고 상 차리는 게 민망했는데 제자들이 차려준다니 감사할 뿐"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