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최고 순간에도 그는 고개를 숙였다

콜린 퍼스(Firth)는 달변가가 아니다. 애써서 골라낸 신중한 단어, 문장의 흐름과는 전혀 상관없는 어색한 표정으로 더듬더듬 생각의 열쇠를 조였다 푼다. 2010년 '싱글맨'으로 오스카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가 아쉽게 뒤돌아선 지 1년여 만. 연이은 도전으로 바짝 긴장한 탓인지 지난달 27일 제83회 아카데미 시상식 내내 웃지 않고 뻣뻣하게 앉아 있던 그는 '킹스 스피치'로 남우주연상 수상자에 호명된 뒤 비로소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말문을 열었다.

"내 경력이 정점에 오른 것 같습니다. 지금 복부가 춤을 추는 것 같습니다. 상을 받은 걸 그들도 즐거워하는 것 같아요. 무대에서 내려가기 전에 다리가 제멋대로 움직이면 어떡하죠."

수상 소감에선 영화제작자로 활동하는 아내 리비아에 대한 애정 어린 헌사가 인상 깊었다. 영화에서 아내의 조력으로 난관을 극복한 조지 6세가 연설을 마친 다음 아내에게 전하던 신뢰의 눈빛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킹스 스피치'는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이 묘한 대구를 이루는 영화다. 연설을 준비하는 앨버트 왕자와 또다시 연설을 준비하는 국왕 조지. 첫 장면에서 더듬거리다 기어이 연설을 마치지 못한 왕자는 영화의 마지막 연설이자 국왕의 자리에 오른 후 첫 번째 연설에서 국민에게 전하는 담화를 멋지게 낭독한다. 영화는 그 사이, 조지 6세가 겪었던 내밀한 고통과 극복의 과정을 정직하게 따라간다. 형을 대신해 국왕의 자리에 오를지 모른다는 중압감, 왕족의 권위를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 이 모든 스트레스가 혼합되어 만들어진 저주가 바로 국왕으로서 최악의 핸디캡인 '말더듬이 증상'이다. 그는 학위 하나 갖지 못했던 한 무명 연극배우 겸 언어치료사 로그(제프리 러시)를 만나 저주의 마법을 푼다.

더듬거리고 뒤돌아서고 좌절하는 남자. 콜린 퍼스가 조지 6세의 모습을 완벽하게 재현한 건 사실 연기를 넘어선 운명이다. 그는 영화 속에서 늘 쉽게 사랑을 고백하지 못했고, 감정을 표현하는 데 서툴렀다. 1995년 TV 드라마 '오만과 편견'의 피츠윌리엄 다아시 역으로 영국 여성들의 마음을 쉽게 사로잡았지만, 전 세계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동시대 영국 배우 휴 그랜트가 로맨스의 왕자로 일찍부터 위세를 떨고 있는 동안 그는 쭈뼛거리며 서서히 무대의 중심을 향해 걸어 나왔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자기표현에 서툰 변호사, '러브 액츄얼리'의 언어적 장벽을 극복하고 프러포즈에 성공하는 작가, '싱글맨'의 섬세한 자아를 가진 동성애자 디자이너까지. 그는 억지로 꾸미지 않은 진실함, 숙맥처럼 더듬거리는 말투로 관객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그의 매력은 이처럼 어딘가 부족한 연애능력에서 나왔다. 키 크고 잘생긴 남자가 생각까지 또박또박 표현하면 유행 타는 베스트셀러는 되었을지언정 오래 남는 스테디셀러는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유창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오래 살아남았고, 진심을 잃지 않았기 때문에 설득력 있게 세상에 호소했다. 세상을 뒤집어 놓는 건 역시 달변이 아니라 진심이다.


콜린 퍼스는

1960년 영국 그레이셧 햄프셔 출생. 1983년 로열셰익스피어극단의 연극 ‘어나더 컨트리’로 무대에 데뷔한 뒤 ‘잉글리쉬 페이션트’ ‘셰익스피어 인 러브’ ‘브리짓 존스의 일기’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 등의 영화로 인기를 얻었다. 2009년 ‘싱글맨’으로 제66회 베니스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 수상. 닉 혼비가 편집한 단편소설집 ‘천사와 대화하기’(2000)에 그의 작품이 실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