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百年大計] 선진국도 소득 2만달러 때 복지욕구 터져 나왔다

미국·일본·프랑스 등 선진국에서도 경제성장 과정에서 복지욕구가 분출했다. 국민의 의식주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할 정도로 경제가 발전한 시점에서 양극화 현상과 삶의 질에 대한 중산층의 기대가 커지면서 복지욕구가 강해졌다.

프랑스는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의 집권 시기(1981~1995)에 복지가 크게 강화됐다. 39시간 근로제(현재는 35시간)를 도입했고 60세 정년 등으로 노동조건을 개선해 대다수 봉급 생활자의 삶의 질을 향상시켰다. 당시 프랑스는 상위층과 노동자들 사이의 생활격차가 심했다. 회사 중역의 자녀 4명 중 3명꼴로 대학에 가는 동안 노동자의 자녀는 100명 중 4명꼴로 대학에 진학했다. 양극화 사회에서 억눌렸던 서민층의 복지욕구가 커진 것이다.

1990년대 이후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장기 경제침체를 겪은 일본의 경우, 국민의 절망감이 복지에 대한 갈망으로 나타났다. 일본 오부치 내각은 1999년 저소득층 3500만 가구에 7000억엔에 달하는 상품권을, 2009년 아소 내각은 2조엔 규모의 현금을 전 국민에게 지급했다. 민주당은 2009년 글로벌 경제위기까지 겹치며 사상 초유의 실업·빈곤 문제에 시달리던 국민에게 아동수당, 출산축하금 인상, 고교 무상교육, 고속도로 통행료 무료화 등 이른바 '생활복지' 공약을 내걸어 정권을 잡았다. 서울대 안상훈 교수(사회복지학)는 "경제성장기에는 굳이 복지를 늘리지 않아도 노동시장 소득이 올라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며 "일본과 한국에서는 그런 경제성장이 멈춘 단계에서 복지욕구가 터져 나왔다"고 말했다.

일부 복지학자들은 '국민소득 2만달러(현재 화폐가치 기준) 시기'를 복지분출 국가들의 공통점 중 하나로 설명한다. 김용하 보건사회연구원장은 "역사적으로 보면 국민소득 2만달러를 넘어서는 시기부터 소득이 행복도와 비례하지 않으면서 그 격차를 복지에 기대려는 심리가 커지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복지 논의가 시작된 초창기에는 경제위기(대공황)나 전쟁(세계대전) 같은 사건이 촉매 역할을 하기도 했다. 영국에서 현대 유럽 복지국가의 기반이 된 '베버리지 보고서'가 나온 것은 1942년이다. 당시 세계대전의 불안 속에 영국인들은 전쟁에 대한 반대급부로 '복지'를 평화의 상징으로 받아들였다.

한림대 석재은 교수는 "영국을 비롯해 일찍이 복지 틀을 갖춘 유럽 국가는 세계대전 이후 1950~1970년대 세계적인 경제 활황 속에 복지를 확대했다"면서 "제도와 경제력을 갖춘 상황에서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 자연스럽게 국민의 복지욕구도 커졌다"고 말했다.

'국가로부터 지원을 더 받고 싶다'는 요구는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층은 물론 중산층에까지 퍼져 있다.

3일 복지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극빈층이라고 할 수 있는 기초생활수급자(4인가구 기준 월소득 143만원 미만)는 약 157만명이다. 정부는 이들에게 복지정책의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이들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특히 대도시에 사는 기초생활수급자들이 주거비를 포함해 더 많은 혜택을 바라고 있다.

소득이 기초수급자의 120% 수준인 차상위층 170만명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 기초수급자들에게 많은 복지혜택이 몰리다 보니 차상위층이 오히려 그보다 못한 삶을 산다는 불만을 갖고 있는 것이다. 기초생활수급자보다 적게 벌지만, 부양가족이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자에 포함되지 못하는 인구도 103만명에 달한다.

꼬박꼬박 세금 내는 중산층은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복지 욕구가 급증하고 있다. 재산 대부분이 부동산에 묶여 있고, 자녀 키우고 부모 부양하느라 노후준비는 안 된 상황에서 직장에서 밀려나면 금세 빈곤층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불안감이 크다. 중산층은 의료·교육·보육·노후·주거 등의 '5대 불안' 요인을 국가가 함께 고민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중산층 3200만명, 차상위층 170만명, 기초생활수급자 157만명 등 국민 3분의 2가 삶의 위기감을 느끼며 국가지원을 바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