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바이오 기술에 제약사들 몸 달았다

그 비결에 대해 성 교수는 "인슐린이나 성장호르몬 같은 단백질치료제의 지속성을 획기적으로 높여주는 원천기술 덕분"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나온 대부분의 단백질치료제는 매일 주사를 맞아야 했다. 단백질이 체내에서 수시간 만에 수명이 다하기 때문. 그런데 제넥신이 개발해 한국과 미국에 특허등록한 '하이브리드Fc기술'은 기존 치료제의 약효를 2주일, 길게는 한 달까지 늘리는 새 기술이다.

그 핵심은 우리 몸에 침입한 병원균을 죽이는 항체의 일부분을 단백질에 결합시킨 것이다. 단백질과 달리 항체는 수명이 수주 이상이다. 항체의 'Fc'〈키워드〉라는 부위가 장수의 비결. 세계 각국 연구진은 이 부위를 단백질에 붙여 수명을 늘리려는 시도를 해왔다. 하지만 이를 붙인 단백질은 치료대상이 되는 세포를 죽이는 킬러로 돌변했다. 항체Fc를 돌연변이시켜 '킬러본능'을 없애는 방법이 나왔지만 또 다른 부작용이 생겼다.

단백질이나 유전자를 이용한 바이오치료제는 요즘 제약업계의 최대 화두다. 화학물질로 만드는 합성신약에 비해 개발비용과 실패확률은 낮지만 약효는 높고 부작용은 적기 때문이다. 시장이 커가는 속도도 연평균 10%로 기존 합성신약(연평균 0.6%)을 압도한다.

국내에서도 제약업계 1위 동아제약이 불임치료제를 내놓았고, 2위 녹십자는 빈혈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광동제약은 왜소증, 보령제약은 면역약화, 코오롱생명과학은 관절염, 일동제약과 한독약품은 각각 당뇨병과 혈우병 치료제를 만들고 있다.

그런데 이들 프로젝트들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기술을 제공한 파트너가 다 똑같다는 점이다. 포스텍(포항공대) 생명공학과 성영철 교수가 이끄는 벤처기업 제넥신이 주인공. 국내 내로라하는 제약사들이 앞다퉈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이 회사의 외형은 보잘것이 없다. 매출은 연간 10억원에 직원은 석·박사 45명을 합쳐 50명이다. 사옥이 없어 포스텍과 서울 가톨릭병원 등 연구실 3곳에서 흩어져 일한다. 이런 초소형 기업이 코스닥에 상장(2009년 9월)된 것이 신기할 정도다.

성 교수와 제넥신 연구팀은 2006년 역발상으로 해법을 찾았다. 모두가 수명이 긴 항체Fc만 주목할 때, 수명은 짧지만 킬러본능이 없는 항체에서 뗀 것과 수명이 긴 항체의 것을 합쳐 부작용이 없는 '이종(異種)Fc'를 만든 것이다. 이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들기까지 1년 6개월간 이틀에 한 번꼴, 총 200여 차례나 실패한 끝에 어느 단백질치료제에나 적용이 가능한 원천기술을 찾았다.

AIDS와 결핵을 치료하는 유전자백신 연구로 유명했던 성 교수가 1999년 제넥신을 창업한 건 사실 좀 우스운 이유 때문이었다. "교내 대학원생 아파트가 다 차서 실험실 연구원들의 숙소가 없었어요. 한 제약사 쪽에 고민을 얘기했더니 '벤처를 하나 세우면 우리가 투자할 테니 그 돈으로 우선 아파트를 구하라'고 하더군요." 그때 투자받은 5000만원으로 연구원들 전세아파트를 구해주고 그는 다시 연구로 돌아갔다.

제넥신이 본격적으로 개발에 나선 것은 포스코의 지원으로 포스텍 생명공학센터가 문을 연 2000년부터. "대학에서도 산업이 필요로 하는 핵심기술을 만들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일었다고 한다. 성 교수의 첫 사업아이템은 자신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에이즈백신. 그러나 대박의 유혹만큼 실패 위험 역시 컸던 터라 관심을 보이는 기업이 거의 없었다. 성 교수는 "기업은 시대를 '열 걸음' 앞서가는 기술보다 '반걸음'만 앞서가는 기술을 원한다는 걸 알았다"고 했다. 그런 깨달음 이후 연구한 것이 하이브리드Fc기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