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기자가 본 수용소탈출 영화 '웨이 백'

이 세계, 이 땅에는 탈출만이 유일한 체제 대항 수단인 나라가 있었고, 지금도 있다. 옛 소련의 스탈린 독재체제와 북한 김정일 폭압(暴壓)정권이 그것이다. 20여년 전 김정일 정권으로부터 탈출했던 기자는 8일 피터 위어 감독의 영화 '웨이 백(The Way Back)'을 통해 기자보다 50여년 전 선험자(先驗者)들의 처절한 생존기를 보고 들을 수 있었다.

피터 위어는 '죽은 시인의 사회' '트루먼 쇼' 같은 히트작을 만들었다. '웨이 백'은 스탈린 통치 시절 시베리아 강제수용소 '캠프 105'를 탈출한 7명의 험난한 여정을 그린 실화다. 1940년대 소련은 독재자 스탈린에 항거하는 정치범과 범죄자들을 캠프 105로 보냈다. 정치범으로 몰려 수감된 폴란드인 야누스(짐 스터게스)는 주변의 죄수 아닌 죄수들이 배고픔과 추위에 시달리다 죽어나가는 현실에 경악하게 된다. 그는 조국에 홀로 남겨진 아내 곁으로 돌아가기 위해 스미스(에드 해리스), 발카(콜린 파렐) 등 6명의 수감자와 함께 철조망을 뚫고 탈출한다. 이들은 시베리아 설원(雪原)의 극한 추위를 견디며 바이칼호수 변을 따라 무조건 남쪽으로 걷는다. 고비사막의 폭염 같은 숱한 난관을 극복하고 탈출한 지 1년여 만에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 땅에 다다른다. 이들이 걸은 거리만 6500여㎞.

영화 속 캠프105에서 기자는 '기시감'(旣視感)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시베리아의 넓은 초원과 영하 40도를 넘는 기온이 그대로 '자연 감옥'인 캠프 105처럼 요덕수용소도 병풍산(해발 2400m), 백산(白山) 등 높이 2000m를 넘는 산들에 둘러싸인 천혜의 요새이다. 스탈린 정권이 그랬던 것처럼 요덕수용소 주변도 북한 인민군 경보대대, 도로여단 같은 특수부대들이 24시간 철통 경비를 서고 있다.

기자도 영화 주인공 야누스처럼 1977년부터 10여년간 요덕 정치범수용소에 갇혀 있으면서 항상 멀리 보이는 병풍산 너머에 있을 어느 곳으로 탈출하는 꿈을 꿨다. 그러나 그것을 실행에 옮긴다는 건 죽음을 결심하지 않고는 도저히 불가능했다. 1985년쯤 수용소를 빠져나가 중국으로 갔다 체포됐던 두 명의 현역 군인 정치범은 요덕수용소 구읍지구 사형장에서 교수대에 매달렸다. 기자는 그들이 수용소 정치범들이 던지는 돌에 맞아 온몸이 찢겨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내심 두 사람의 용기를 부러워했었다. 기자가 수용소에서 석방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북한 땅을 탈출했던 건 수용소 밖 역시 하나의 거대한 감옥이어서 압록강 건너로 보이는 땅이 자유를 찾을 수 있는 희망봉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여러 차례 생사의 고비를 넘어 인도에 도착, 환희의 웃음을 짓던 영화 속 야누스는 1992년 대한민국 땅에 발을 디딘 한 탈북자의 모습 그것이었다.

지금도 매달 300명 이상의 북한 주민들이 압록강을 건너 중국·라오스·캄보디아·태국을 거치는 수천㎞의 대탈출 노정 끝에 자유를 찾고 있다.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 모두 지금 우리 동포가 벌이고 있는 '북한판 웨이 백'도 한 번쯤 생각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17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