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과 막춤으로 마음의 짐 덜어준게 특효약"

기자 주로 어떤 때 환자들이 오는지….

이 대학 졸업 무렵 구직활동을 할 때나 취직하고 나서가 많아요. '부장님' '과장님' 단어를 말하지 못하거나, 한 달 동안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해놓고도 말 한마디 못하고 나오는 사람도 있죠. 아예 직장을 가질 생각을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고 이성(異性)을 만나지 않으려는 일까지 있어요. 짬뽕이 먹고 싶은데 원하는 걸 얘기 못하니까 계속 자장면만 먹을 수밖에 없었다는 환자도 봤어요. 한 여성은 시댁에 안부 전화를 하고 싶은데 말을 더듬고 말문이 막히니까 전화를 못했죠. 나중에 시부모에게 싫은 소리 들으면서도 변명 한마디 못했다고 해요.

#3. 전문 언어치료사가 조지 6세에게 구슬을 건네주며 입에 넣으라고 한다. 구슬을 입에 잔뜩 넣고 말을 하려던 조지 6세는 결국 다 뱉어내고 방을 나간다. 왕비는 연극배우이자 무면허 언어치료사인 라이오넬 로그를 찾아간다.

기자 실제 저런 방법을 썼나요.

이 옛날 책에 나오기는 합니다. 입 안에 침을 꽂은 채 말을 시키거나 혀를 자르기도 했어요. 혀 밑에 상아로 만든 고리를, 입천장에 휘파람 상자를 달기도 했죠. 다 소용없어요. 노래하듯 말하기, 속삭이듯 말하기, 박자기(메트로놈)에 맞춰 말하기와 같은 방법도 있었는데 일시적인 효과만 낼 뿐입니다.

기자 영화 속 로그의 치료법은 어떤가요.

이 좀 엉터리처럼 보여도 꽤 효과적인 치료법을 사용하고 있어요. 연극배우라 그런지 복식호흡과 혀 풀기, 얼굴 근육 풀기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네요. 로그가 왕에게 시키는 욕하기나 춤추며 말하기도 긍정적입니다. 무엇보다도 아버지와 형에게 억눌린 조지 6세의 마음을 열고 왕위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주는 데 성공한 게 제일 중요한 거죠.

'말더듬이왕' 조지 6세가 마침내 국내 관객을 찾아온다. 영화 '킹스 스피치(The King's speech)'다. 지난달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감독상·남우주연상·각본상을 받은 올해 최고 화제작 중 하나다. 톰 후퍼 감독이 만들었다. 영국 왕 조지 6세(콜린 퍼스)가 무면허 언어치료사 라이오넬 로그(제프리 러시)를 만나 우정을 쌓으면서 연설 공포증을 극복, 전시(戰時)의 국민을 하나로 묶는 대중연설을 하는 데 성공하는 과정을 그렸다.

영화의 핵심 관람포인트는 콜린 퍼스의 말더듬증 연기와 제프리 러시의 치료가 얼마나 현실적이고 실제적인지이다. 언어전문치료사 이수복(42)씨가 9일 영화 시사회를 보면서 전문가의 눈으로 이 궁금증을 풀어줬다. 이씨는 한 사설 언어치료연구실 부소장으로 10년 가까이 유창성장애(流暢性障碍·말더듬)와 같은 언어 발달 장애를 치료해왔다.

#1. 조지 6세가 런던 웸블리에서 대영제국박람회 폐막식 연설을 하려고 한다. 수천 명의 군중이 지켜본다.

조지 6세: "저는 오늘 친애하는 국왕…폐하…에…에"(계속 말을 못 꺼내고 군중은 실망한 눈빛을 감추지 못하며 고개를 숙인다.)

이 바로 저 눈빛! 저 청중의 침묵과 경멸하는 눈빛 때문에 더 힘든 거예요. 말더듬는 사람을 만나면 아예 시선을 외면하는 사람들도 있죠. 그러면 환자는 공포감이 더해지면서 말이 아예 막혀버려요.

기자 콜린 퍼스의 말더듬 연기는 어떤가요.

이 비슷하게 하려고 노력은 하네요.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 연기는 실제와 좀 달라요. 말을 더듬는 사람들은 말을 하면서 손을 떨거나 눈을 깜빡이는 등 신체적 움직임을 보여요. '부수행동'이라고 하죠. 또 긴장 때문에 얼굴이 약간 떨리기도 하고 분노·억압·수치 등 다양한 감정이 얼굴에 드러나죠.

#2. 조지 6세가 두 딸 엘리자베스(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와 마거릿의 방에 찾아간다. 아이들이 이야기해달라고 조르자 그는 말을 더듬으면서 간신히 '펭귄이 된 아빠'라는 이야기를 마친다.

기자 말더듬도 유전이 되나요.

이 아무래도 아이들은 부모의 말을 따라 배우니까 자식들도 말을 더듬게 될 확률이 높죠. 그래서 아이를 가질 예정이거나 아이를 막 낳은 부부가 걱정이 돼 찾아오는 사례가 꽤 있어요.

#4. 영화 끝 무렵, 조지 6세는 약간 느릿하지만 단호하고 진정성이 느껴지는 말투로 첫 전시(戰時) 연설을 하는 데 성공한다. 왕실 사람들은 박수를 치고 왕비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내쉰다.

이 일상생활에 큰 지장만 없다면 말을 좀 더듬어도 상관없지 않나요. 우리 모두 말을 하면서 조금씩은 더듬어요.

기자 치료에 성공하면 다들 저렇게 기쁘겠죠.

이 어떤 남자분은 서점에 가서 점원에게 말을 걸고 책을 사오는 데 성공했다고 감격해서 울기도 했어요. 후반부에 가니 남자주인공의 연기가 많이 나아졌네요. 유창성장애를 갖는 사람들이 느끼는 분노와 불안이 얼굴에 드러났어요.

시사 후 시사가 끝난 뒤 이씨가 일하는 언어치료실에 18살 남학생이 상담을 받으러 왔다. 며칠 전 '킹스스피치'를 본 그는 "곁에 두고 여러 번 보고 싶은 영화"라고 했다. 가슴이 벅차오르는지 말을 끝까지 마치지 못한 그는 이런 영화감상문을 썼다. '제 안에 담아두고 있던 저의 마음과 인생을 말해주는 영화입니다. 말더듬이는 장애인 취급도, 정상인 취급도 못 받습니다. 그러다 보니 말문이 닫히고 평생 말을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습니다. 좋아하는 여자애한테 말도 한번 못 걸어봤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말 더듬는 사람들이 느끼는 아픔을 조금이나마 이해해주길 기대해봅니다.'

17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