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LG배 세계기왕전] 死後藥方文

〈총보〉(1~124)=바둑을 '축소판 전쟁'이라고 부르는 것은 수천년 전 만들어진 이 동양판 보드게임이 인간세상 전쟁의 모든 요건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포진력(布陣力)·화력(火力)·속력(速力)만으론 부족하고 결단력·담력까지 필요로 한다.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까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한 필수능력은 어쩌면 인내력인지도 모른다.

초반에서 중반으로 넘어갈 무렵까지 계속된 탐색전이 볼 만했다. 멍타이링은 대선배를 맞아 밀리지 않고 잘 버텨갔다. 하지만 51 시점에서 인내력을 잃었다. 72에 두어 중앙 흑을 살리고 길게 갈 대목. 상대적으로 쿵제의 노련미와 임기응변 능력이 돋보였다. 초읽기에 몰린 쿵제와 달리 멍타이링은 시간 재고(在庫)가 많았던 상황이어서 더욱 대조를 이뤘다.

그 얼마 뒤 불과 69수째에 흑은 허망하게 무너졌다. 팽팽한 긴장감을 더 이상 붙들고 있기엔 아직 모든 역량이 부족했다는 방증이다. 69로도 참고도 1, 2를 교환 후 3에 둘 장면. 5로 백A를 방지하고 8과 9를 맞봐 10까지 흑이 선수로 살았더라면 바둑도 이제부터였을 것이다. (80…75, 124수 끝, 백 불계승, 소비시간 백 3시간 2분, 흑 2시간 25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