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e] 대기업 이익공유제 "사회주의 용어인지…", 정부 경제정책 "낙제는 아닌 것 같다"

이건희<사진> 삼성전자 회장은 10일 정운찬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의 이익공유제 구상에 대해 "경제학 책에 나오는 말도 아니고 누가 만들어낸 말인지, 사회주의 용어인지 공산주의 용어인지 도대체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이날 오후 4시 50분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장단 회의가 열리는 서울 한남동 하얏트호텔에 도착, "이익공유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내가 어려서부터 기업가 집안에서 자랐고 학교에서도 경제학 공부를 했는데 그런 말은 들어보지도 못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회장은 "이익공유제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냐"는 질문에 대해 "긍정적이다 부정적이다를 떠나서 누가 만들어낸 말인지, 사회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자본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아니면 공산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를 도대체 모르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의 이 발언은 이익공유제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재계 1위인 삼성그룹의 총수가 '공산주의' '사회주의'까지 운운하며 이익공유제를 비판함에 따라 작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이익공유제는 대기업의 초과이익을 중소 협력업체와 나누자는 구상이다.

이 회장은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점수를 매기면?"이라는 말에는 "참 어려운 질문"이라고 한 뒤, "과거 10년에 비해 상당히 성장을 해왔으니 낙제점을 주면 안 되겠죠"라고 말했다. 과거 좌파정권 10년보다는 낫다는 뜻이다. 하지만 곧이어 "흡족하기보다는 낙제는 아닌 것 같다"며 여운을 남겼다.

이 회장의 이날 발언은 이례적이라고 할 만큼 직설적인 비판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1995년 이 회장의 '베이징 발언'을 연상시킨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1995년 중국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정치는 4류, 행정은 3류, 기업은 2류"라고 말해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그 발언으로 삼성은 당시 김영삼 정부의 견제를 받아 한동안 큰 불편을 겪었다.

이 회장이 '베이징 발언'을 연상시키는 비판 발언을 쏟아낸 것은 현 정부의 대기업 압박이 지나치다고 판단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경제단체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재계는 잡셰어링(일자리 나누기)과 대규모 투자, 미소금융재단 운영 등 최대한 협력했다"며 "그런데도 대기업을 지나치게 몰아붙이는 것에 대해 재계가 조금 서운함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삼성 관계자는 "이익공유제란 것이 정부의 입장이 아니고 정운찬 위원장의 개인적인 의견인 만큼 비판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면서 "삼성은 정부가 상생협력을 강조하기 이전부터 이에 앞장서 왔고 이런 노력은 계속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히 밝혀두고 싶다"고 말했다.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은 이 회장의 발언 내용이 알려진 이후 여러 차례 전화를 걸고 문자메시지를 남겼으나 밤늦게까지 응답하지 않았다.

정부의 경제정책이 낙제점을 면한 수준이라는 이 회장의 발언에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 회장이 평소에 삼성에 대해서도 후하게 점수를 주지 않는 걸로 알고 있다"며 "기업 쪽에서 정부가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는 취지로 이해한다"고 말했다.

이날 열린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서는 이익공유제와 관련한 별다른 언급은 없었다고 정병철 전경련 상근부회장이 전했다. 정 부회장은 "다만 현재 56개 회사를 대상으로 동반성장지수를 발표할 것으로 알고 있는데, 모두가 A학점을 받으면 다 칭찬해 줬으면 하는 게 재계의 바람"이라고 말했다.

전경련 회장단은 또 2030년까지 1인당 국민소득 10만달러, 세계 10대 경제강국 진입을 목표로 하는 '우리 경제 희망 100년 비전'을 수립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정 부회장은 "2030년 소득 10만달러를 달성하려면 매년 5% 이상 성장을 해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사회 전반의 제도개혁과 교육 혁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말했다.

허창수 전경련 회장의 취임을 축하하기 위해 열린 이날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는 21명의 회장단 멤버 중 역대 최대인 17명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