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에 비친 '모던 조선'] [9] 교수들이 회사 돌며 '취직行商'…청년 실업자 넘쳐나

"가두에 범람한 실업군! 아름다운 구직의 꿈을 꾸고 시골서 올라온 구직군! 그들은 아픈 다리를 쉬일 겨를도 없이 초조한 불안과 안개 속 같은 일루의 희망을 갖고 돌고 또 돌면서 구직의 관문을 두다리고 있다…."(조선일보 1932년 1월 28일자)

1930년대 대공황의 그늘은 식민지 조선에 더욱 가혹하게 드리워졌다. 중학교건 전문학교건 졸업해봐야 취직자리는 가뭄에 콩 나듯 했다. 청년 실업자가 넘쳐났다. 1936년 3월 25일자 조선일보는 "금일에 이르러서는 학교를 졸업하는 그날로 실업상비군에 편입되는 것이 예사가 되어 있다"고 개탄했다.

취업전선은 치열했다. 1931년 2월 27일자 조선일보는 "경성부내 30여 개 학교 졸업생 2500여 명 중 직업을 구하기 위해 헤매는 사람만 1300여 명이다. 학생들은 은행과 회사의 중역 사택 방문하기와 유력자의 소개와 추천을 얻어 억지로라도 채용되기를 힘쓰고 있다. 은행, 대상점, 관청 책상에는 졸업생들의 이력서가 산같이 쌓여 있지만 채용될 인원은 230여 명뿐…"이라고 보도했다.

취직이 힘들자 교수들까지 제자들을 위해 발벗고 나섰다. 1933년 12월 18일자 조선일보의 취업관련 기사 제목은 '겨울방학은 취직 행상(行商) 활동기'이다.

"가는 곳마다 '영예로운 지식청년실업자'가 홍수같이 넘친다. 각 전문학교에서는 방학을 맞아 교원들이 '취직 행상'을 다시 하게 되었다. 보성전문학교는 교수 4명이 각지로 출장하여 관청, 은행, 회사 방면에 취직운동을 개시하기로 하였다. 공사립 각 전문대가 모두 취직운동의 길을 떠나게 되어 취직 전선에 대혼잡을 이룰 모양이다."

고등교육 받은 이들의 사정이 이러니 일반인의 취업난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1933년 6월 4일자 조선일보는 "도시 노동시장에는 '내게 직업을 다오' 하는 절실한 요구를 부르짖는 구직군이 거리에 범람하고 있다"며 "직업소개소 문을 두드린 일용노동 구직자가 지난 5년간 8000명에서 19만 명으로 격증했다"고 보도했다. "면서기 산림감시원 등 30명을 모집하는 데 지원자가 800명을 돌파했지만 아직도 끊임없이 밀려드는 지원자로 군청 부근은 인산인해라더라"는 보도도 눈에 띈다.(1931년 3월 27일자)

만해 한용운은 조선일보 1936년 3월 19일자 '심우장만필'에서 취직난으로 고통받는 조선인들의 처지를 이렇게 토로했다. "사람이라는 것은 첫째로 먹고 살아야 하는 것인데 경제권외에 방축(放逐)당했다고 할 만한 조선 사람으로서 먹고 살기 위하여 취직난을 부르짖지 아니할 수가 없는 것이다.(…) 취직난의 소리는 졸업생의 소리뿐 아니라 일반 사회의 소리이며 전 조선민족의 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