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환자 상담하다 보면 의사도 때론 스트레스받죠"

한 환자가 녹음 테이프라도 틀어놓은 듯 30분 넘게 같은 이야기를 반복한다. 밖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다른 환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제 신세타령만 거듭한다. 환자를 상담하던 정신과 의사는 슬그머니 오른쪽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오른쪽 사타구니를 꼬집기 시작한다. '오른쪽 사타구니 꼬집기'는 표정을 일그러뜨리지 않기 위해, 화를 참기 위해 그가 오래도록 가져온 습관이다. 이 직업병 때문에 그의 오른쪽 사타구니는 항상 시커멓게 멍들어 있다.

35년 경력의 정신과 의사가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받아온 스트레스를 털어놓은 책을 냈다. 심리치유 에세이집 '나는 나를 위로한다'(초록나무)를 쓴 이홍식(60) 연세대 의대 정신과 교수다. 정신과 의사는 상당한 스트레스에도 까딱없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매일 환자들의 이야기를 하염없이 들어야 하는 그들은 남이 알지 못하는 정신적 고통에 시달린다. "돈 문제나 연인의 배신 때문에 힘들다며 현실적 이야기를 털어놓는 환자들을 볼 때면 '아무리 해도 도와줄 수 없다'는 무력감이 오죠. 너무나 이기적인 환자들을 대하다 보면 나도 인간이니 미운 마음이 드는데, 직업상 그래선 안 되니까 더 울화가 치미는 거죠. 다 내가 수양이 덜 돼서 그렇습니다."

이 교수는 성마르고 완벽주의적인 성격 때문에 가족에게 쉽사리 화를 냈던 자신에 대한 반성, 치매 노모(老母)를 모시면서 아내와 겪었던 갈등,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마라톤과 걷기로 풀었던 경험 등을 적었다. "부끄러운 이야기들을 공개하자니 마음속에서 저항도 많았죠. 그래도 마음에 쌓아놨던 이야기들을 풀어놓으면서 저 자신이 치유되는 것을 느꼈어요."

그는 "돌이켜보면 항상 나 자신을 달래면서 살아왔던 것 같다"면서 "독자들이 '정신과 의사조차도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데서 위안을 얻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나름의 방법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