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에 비친 '모던 조선'] 인텔리 상징 '양복' 노린 도둑 극성… 檢事局도 털려

조선일보 1929년 1월 18일자는 '인간 염라대왕인 검사도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할'사건의 발생을 전했다. '이 세상 사람의 모든 과실과 범죄를 재판하는 무서운 법정, 더구나 생각만 해도 끔직한 검사국 문 앞에서 백주에 도난을 당한 놀라운 일'이 발생한 것이다. '재판소 창설 이래 처음"이라는 검사국 사무실 도난사건에서 도둑맞은 물건은 양복 외투였다.

'양복 도둑'은 일제하 사건기사의 단골 메뉴였다.'양복 3벌 훔쳐 입고 신사 풍도를 가장(1921년 7월 21일자)' '양복점에 강도, 피해가 500여원(1924년 1월 21일자)','양복 전문 절도(1927년 2월 4일자)'…. 양복 도둑이 잡히면 압수된 장물로 '경찰서가 일시 양복점'이 될 정도(1929년 3월 7일자)였다.

양복 도둑이 이토록 극성을 부린 것은 당시 양복은 월급쟁이 두세 달치 봉급을 털어넣어야 장만할 수 있는 고가품인 데다 '관리'나 '모던 보이' '인테리'의 트레이드 마크였기 때문에 중고품의 수요가 많았기 때문이다.

1937년 1월 9일 퇴근길의 경성지방법원. 새해 사무실에 새 양복을 입고 나온 직원 5명의 외투가 사라졌다. 경성부청과 세무서 등, 관청 사무실에서도 양복 외투가 잇달아 사라졌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수사에 나선 경찰은 3월 25일 22살의 범인을 체포했다. 조선일보는 1937년 3월 27일자 석·조간에 잇달아,'훔친 외투 오십벌 / 꼬리가 길어 본색 탄로' '양복상으로 가장 / 관공서청에 침입 / 60여벌 외투만 전문으로 절도' 등의 제목을 달아 이 범인의 양복 절도 행각을 대서특필했다. 기사에 따르면 범인은 "자전거에 양복감 견본을 싣고 양복상으로 위장, 관공서에 들어가 사무실에 걸어 놓은 외투를 몰래 들고 나왔다"고 했으며 "너무 많은 옷을 훔쳐 번번이 이름을 바꾸긴 했지만 한 전당포에도 몇 벌씩의 외투를 맡길 수밖에 없어 결국 경찰에 꼬리가 잡히고 말았다"는 것이다.

조선일보에서 삽화를 그린 안석주는 고정란 '만문만화(漫文漫畵)'의 '만추풍경-고물상 양복'편에서 '인테리는 배는 곱하도 양복은 깨끗이, 빗깔, 스타일은 현대적이어야'한다고 생각해 '돈 십원, 오원 한 장을 들고 고물상으로 고물상으로, 그 어느 놈 그 어느 병자가 입고 다니든 것인지도 모를 양복을 만지작'거린다고 묘사했다(1933년 10월 20일자). 당시 조선일보 사회면을 보면 "친구의 양복 빌려 입고 맛선 보앗더니 툇자, 홧김에 전당잡혀 술타령"(1937년 4월 8일자)을 벌이거나 "취직도 못한 졸업생의 양복대금이 백원, 옷에만 돈 들이고 주머니는 빈탕"(1929년 4월 7일자)이 되어버리는 '못된 유행'이 성행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