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① 도이치증권, 매물폭탄 한방에 2000억 이상 벌어

매월 둘째 목요일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평범한 목요일 중 하루일 뿐이지만 여의도 증권업계 사람들에게는 ‘공포의 날’로 인식된다.

지난해 11월11일 2조원이 넘는 매물폭탄을 던져 코스피 지수를 50포인트 이상 급락시킨 도이치뱅크 사건의 여파가 사그라들지 않고 있어서다. 도이치뱅크 홍콩지점과 도이치증권 뉴욕 및 서울법인 관계자들이 검찰에 고발 통보됐지만 만기일이 다가올 때마다 투자자들의 불안은 점점 커져만 가고 있다. 또 언제 외국인 투기세력이 주식을 대거 팔고 빠져나갈 지 모른다는 공포감 때문이다.

올해 첫 '네 마녀의 날(선물·옵션 동시 만기일)'이었던 지난 10일 주식시장은 어김없이 초긴장 상태에 빠졌다. 주식시장 마감(오후 3시)을 40여분을 앞두고 서울 여의도 증권가에서는 도이치증권이 선물·옵션 동시 만기일에 제2의 매물폭탄을 던질 우려가 있다는 설이 메신저를 통해 퍼졌다.

‘콜 매도 대박, 풋 매도 쪽박’ 이라는 흉흉한 루머도 돌았다. 실제 며칠 전부터 도이치증권 창구에서 매도 물량이 쏟아져 나왔고 이날도 오전부터 삼성전자(005930)·현대자동차(005380)등 시가총액 상위 종목 위주로 매도 주문이 많이 나왔다. 증권가에서는 작년 매물폭탄 사건으로 일부 영업정지 징계를 받은 도이치증권이 아예 한국시장에서 철수하기 위해 주식을 파는 게 아니냐, 징계에 대한 항의성 매물폭탄을 던지는 게 아니냐는 소문까지 돌았다.

이날 외국인들은 1조1776억원에 달하는 주식을 내다팔았지만 우려했던 충격이 발생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이후 옵션 만기일에 투자자들의 긴장 지수가 최고조로 치닫는 현상이 매달 반복되고 있다. 작년 ‘11·11 도이치쇼크’의 악몽을 아직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도이치뱅크 시세조종사건 재구성

옵션만기일이었던 작년 11월11일. 도이치뱅크 홍콩지점의 지수차익거래 운용팀장 겸 담당 상무와, 뉴욕 도이치은행증권 글로벌 지수차익거래 담당 책임자 등은 한국 증권자회사인 한국도이치증권 파생상품 담당 상무와 공모했다.

사전에 미리 구축해 놓은 파생상품 투기적 포지션(합성선물 매도 및 풋옵션 매수)에서 이익을 얻을 목적으로 지난해 지수차익거래를 통해 보유하고 있던 코스피200 구성종목 2조4424억원을 11월11일 장 마감 동시호가 시간에 전량 매도했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지수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우량주를 중심으로 팔아치웠기 때문에 주가는 50포인트 이상 급락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들이 주가가 급락할 때 이득을 얻는 파생상품을 미리 사놓은 상태였다는 점이다.

옵션이란 특정 대상물을 장래의 지정된 날이나 아니면 그 이전에 일정한 가격으로 사거나 팔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살 수 있는 권리가 콜옵션이고, 팔 수 있는 권리가 풋옵션이다. 콜옵션을 매수한다는 것은 살 수 있는 권리를 사는 것이다.

예컨대 A가 콜옵션을 매수했다면, A는 앞으로 주가가 오를 것으로 예상을 하고 지금 권리를 행사해서 주식을 미리 싸게 사놓는 전략이다.

그럼 반대로 풋옵션을 매수한다는 것은 팔 수 있는 권리를 사는 것이다. 예컨대 B가 풋옵션을 매수했다면, B는 앞으로 주가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하고 지금 권리를 행사해서 주식을 미리 비싸게 파는 전략이다.

◆ 매물폭탄 한 방에 2000억원 이상 벌어

도이치뱅크 관계자들은 이런 수법으로 코스피200 지수를 하락시킴으로써 448억7873만원의 부당이득을 취득했다. 그러나 이들이 얻은 이익은 이 뿐만이 아니다.

환차익과 대차거래로 얻은 차익이 더 크다. 외국인들이 가장 민감해하는 부분이 환율이다. 파생상품 거래를 통한 이익보다 환차익을 통해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번 시세조종을 공모한 셈이다.

도이치뱅크는 국내 주식을 매도해 원화를 미국 달러화로 바꾸는 과정에서 약 1000억~1500억원에 달하는 환(換)차익을 얻었다. 평균적으로 미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이 약 1160~1180원이었던 시기에 주식을 매입해서 1107.9원(11월 11일 종가 기준)일 때 팔아 약 5~7%의 이익을 얻은 셈이다.

또 도이치증권 창구를 통해 2조원이 넘는 주식 매물폭탄을 던지기 전까지 장기간에 걸쳐 매수한 국내 주식을 다른 기관 투자자들에게 빌려주고 그 대가로 100억원이 넘는 수수료를 챙겼다.

대차거래란 투자자들이 주식을 장기간 보유하고 있는 기관으로부터 주식을 빌려 매도한 후, 일정 기간 안에 이를 구입해 반환하는 거래 방식이다. 예컨대 주식을 빌리는 사람 입장에서는 A주식이 현재 1만원일 때 이 주식을 빌려서 1만원에 팔고 주가가 9000원으로 하락할 때 이 주식을 다시 사서 갚으면 1000원의 이득을 얻을 수 있다.

도이치뱅크는 그동안 대형주 위주로 구성된 코스피200 내 주식을 2조원 넘게 사왔고, 한국거래소에 이를 매수차익잔고(차익거래를 위해 선물을 매도한 대신 현물을 사놓은 것)로 신고해 왔다. 그러나 파생상품 만기일이 올 때마다 이 주식을 팔지 않고 계속 이월(移越)해 왔다. 이 때마다 대차거래를 통해 주식을 빌려주고 1%가 넘는 수수료를 챙긴 것이다.

◆ 국내 운용사 파산위기, 소송戰 불사

도이치뱅크의 시세조종 사건으로 개인투자자들과 자산운용사들은 최소 1400억원의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큰 손실을 입은 회사는 와이즈에셋자산운용. 이 회사는 다크호스펀드를 운용하는 과정에서 법에서 정한 한도를 70배 이상 초과하는 무리한 베팅으로 898억원에 달하는 손실을 냈다. 하나대투증권은 자사 계좌를 통해 풋옵션 거래를 한 와이즈에셋자산운용의 손실 중 760억원을 대납해 같이 피해를 입었다.

현재 하나대투증권은 와이즈에셋을 상대로 옵션쇼크 당시 대납한 760억원에 대한 구상권 청구를 진행 중이다. 또 토러스투자자문도 400억원대의 손해를 입었고 몇몇 증권사들도 수십억원에 달하는 손실을 냈다.

이들 회사들은 손실 뿐만 아니라 금융당국의 징계도 받을 전망이다. 와이즈에셋자산운용은 이달 말 금융당국으로부터 6개월 영업정지와 대표이사 면직, 직원 3개월 감봉이라는 중징계 처분을 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하나대투증권도 기관경고를 받을 것으로 전해졌다.

이 사태로 거액의 피해를 본 와이즈에셋자산운용과 하나대투증권은 도이치뱅크와 한국도이치증권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