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1 일본 대지진] 가구에 눌린 80세 할머니… 손자가 물 떠먹이며 열흘을 버텼다

"여기, 바깥인가요? 손자 아이는요?"

20일 오후 4시 30분쯤 미야기현(宮城縣) 이시노마키시(石卷市) 가도와키초(門脇町). 3·11 대지진 이후 줄곧 무너진 주택에 갇혀 있던 80살 할머니는 사고 10일 만에 구조되던 순간 손자부터 구해달라고 했다. 할머니는 "손자는 이미 구조대가 보호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정말 잘됐다. 나는 괜찮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30분 전, 가도와키초 일대를 수색하던 경찰은 "살려달라"는 소년의 목소리를 들었다. 소리를 따라가자 온몸을 수건으로 둘둘 만 채 벌벌 떨고 있는 소년이 폭삭 주저앉은 주택의 지붕 위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소년은 "지붕 아래 할머니가 갇혀 있다"고 했다.

이들의 구조 소식에 일본 언론은 재해 현장에서 생존율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72시간(3일)의 벽'을 훨씬 뛰어넘는 '217시간 만의 기적의 생환'이라며 기뻐했다. 쓰나미가 덮쳤을 때 할머니 아베 스미(阿部壽美·80)씨는 방학을 맞아 센다이(仙臺)에서 놀러 온 손자 아베 진(任·16·고1)군과 마주앉아 점심을 먹고 있었다. 지진의 충격에 넘어진 식기 장에 갇힌 할머니는 꼼짝도 못했다. 진군은 다행히 움직일 수 있었지만 무너진 집 밖으로 빠져나갈 틈은 찾지 못했다. 구해달라고 외쳐봤지만 밖에선 반응이 없었다. 밤이 되자 영하의 추위가 엄습했다.

지진 이튿날 진군은 기적적으로 센다이에 있는 가족과 50초간 통화하는 데 성공했다. 가족들은 곧장 할머니와 진군을 구하러 달려갔지만 살아 있는 두 사람을 찾지 못하고 발만 굴렀다. 할머니의 집이 어디론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진군과 할머니가 갇힌 집에 있던 냉장고에는 우유 2팩이 있었고 요구르트와 콜라, 물이 조금 남아 있었다. 소년은 물과 우유 등을 꺼내 할머니와 나눠 먹으며 버텼다. 추위를 견디기 위해 소년은 수건을 온몸에 둘렀고 이불을 꺼내 할머니를 덮어줬다.

갇힌 지 얼마나 됐을까. 소년의 체온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추위와 불안, 배고픔에 의식이 가물가물해질 즈음 소년은 기적적으로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구멍을 발견했다. 밖으로 나와 앉아 있던 소년의 눈에 저 멀리 '사람'의 모습이 들어왔다. 행방불명자를 찾던 경찰이었다. 할머니가 살던 집은 이시노마키만으로 흘러들어 가는 강 하구에서 상류 쪽으로 약 1㎞ 떨어진 지점에 있었다. 그런데 경찰이 이들을 구출한 곳은 원래 집이 있던 곳으로부터 수십m나 떨어져 있었다. 경찰은 소년에게 그 사이 열흘이 흘렀다고 알려줬다.

구조된 할머니와 소년은 이날 오후 5시쯤 경찰 헬기로 이시노마키시 적십자병원으로 이송됐다. 할머니는 자신의 이름을 구조대에게 또렷이 알릴 정도로 의식이 분명했다. "부상이 있느냐"는 질문에 "없다"고 말했다. 끝까지 의연하던 진군은 긴장이 풀린 듯 그제야 "발의 감각이 없다"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