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함 속을 보라

지난해 가을 폭넓은 계단식 폭포인 철원 고석정 직탕폭포를 촬영하면서 사진가 민병헌(56)은 폭포의 수평면과 수직면 사이 경계에 망원 렌즈를 들이댔다. 인화된 사진에는 폭포 전체가 아니라 시커멓게 일렁이는 물결과 낙하하면서 부서지는 흰 물거품 일부만이 형태를 드러냈다. 별다른 설명이 없으면 폭포라는 걸 짐작하기 힘든 이 작품에 민병헌은 'FF 151 BHM 2010'이라는 모호한 이름을 붙였다. 'FF 151'은 작가가 임의로 붙인 일련번호, 'BHM'은 '병헌 민'의 약자다.

5월 7일까지 서울 방이동 한미사진미술관에서 개인전 'Waterfall'을 여는 민병헌은 "관객이 내 작품을 '물'이라고만 인식하고 다양한 연상을 했으면 좋겠다. 작가가 작품에 구체적인 이름을 붙이면 그는 '내 작품을 이렇게 봐달라'고 지시하는 것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폭포, 안개, 눈…. 이번 전시에 나온 작품 70여점은 모두 뿌옇고 흐릿하고 정체가 모호한 흑백사진이다. 콘트라스트가 강하지 않아 대개 회색이다. 줄곧 흑백사진만 고집해온 작가에게 사진이란 인화지 위에 카메라로 회색조의 추상화를 그리는 작업이다. 그는 "회색에도 다양한 층위의 색채가 있다. 카메라 셔터 속도와 빛의 세기에 따라 피사체가 어떤 톤의 회색으로 보이는지가 내 주된 관심사"라고 말했다.(02) 418-1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