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다리에 해쑥을 더하는 순간 봄의 맛이 완성된다

제철 만난 도다리와 해쑥의 행복한 만남, 도다리쑥국을 맛보러 통영에 다녀왔습니다. 통영에서 도다리쑥국만 먹고 오면 억울하죠. 멍게, '봄멸(봄에 나는 멸치)' 등 제철 맛난 봄바다 별미도 함께 맛보고 오세요. 미륵산 케이블카는 충무김밥의 원조라는 '꼬지김밥' 싸들고 올라가봤습니다.
 

남쪽 바다의 바람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햇볕은 따뜻했다. 봄이 오기는 왔구나 싶었다. 통영, 거제 등 남쪽 바닷가 사람들은 햇볕이나 바람이 아닌 음식으로 봄을 실감한다. 도다리쑥국이다. 지난주 경남 통영에 갔다. 식당마다 '도다리쑥국'이라는 푯말을 문에 붙이거나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도다리는 '봄 도다리, 가을 전어'란 말이 있을 정도로 맛난 생선이다. 광어와 거의 똑같이 생겼다. '좌광우도'만 알면 구분은 간단하다. 생선을 앞에서 봤을 때 두 눈이 왼쪽으로 쏠렸으면 광어, 오른쪽으로 쏠렸으면 도다리란 뜻이다.

요즘 도다리가 산란기를 앞두고 그 맛이 절정에 올랐다. 암컷은 노르스름한 알을 배고 수컷은 이리(정액 덩어리)를 뱃속 가득 품는다. 통영 서호시장에서 1㎏에 1만7000~2만원쯤 한다. 도다리쑥국을 끓이려면 남자 어른 손바닥만 한 도다리가 적당하다. 국 한 그릇에 한 마리 들어간다고 계산하면 된다. 1㎏이면 서너 마리쯤 된다.

집에서 끓여 먹어보려고 도다리 1㎏을 샀다. 도다리를 비닐봉지에 담던 아지매는 "국 끓여 먹기엔 암컷보다 수컷이 더 맛있다"고 했다. "영양이 모두 알로 가니까 암컷은 살이 퍽퍽해. 그리고 이리가 얼마나 달고 고소한데." 도다리는 회로 먹어도 맛있다. 하긴 제철 만난 생선으로 뭘 해먹어도 맛 없겠냐만. 뼈회(세꼬시회)용으론 국거리보단 좀 작아야 뼈가 억세지 않아 알맞다.

도다리만으론 도다리쑥국이 완성되지 않는다. 얼어붙은 땅을 뚫고 나오는 해쑥이 더해져야 도다리는 비로소 봄 별미로 재탄생한다. 도다리가 담긴 비닐봉지를 받아들고 돈을 건네는데 마침 광주리에 해쑥을 가득 담은 할매가 다가왔다. "다 팔고 이거 남은 건데 5000원 주고 다 가져가. 오늘 아침 산에서 캔기라." 생선을 팔던 아지매가 귀에 입을 대더니 "비싸다. 사지 마라. 저 할매 좀 있으면 또 쑥 들고 나올기다"라고 속삭인다. 속는 셈치고 할매가 들고 온 해쑥을 다 샀다.

도다리쑥국을 맛보기 위해 통영여객선터미널 맞은편 '통영식당'에 들어갔다. 식당 주인 유숙명씨는 "도다리쑥국은 원래 음력설 쇠면 하는데, 올해는 이제 시작한 지 두 주밖에 안 됐다"고 했다. "지난 겨울 유난히 추웠잖아. 여름은 가물었고. 웬만하면 쑥이 올라올 긴데 올해는 3월 지나서야 쑥이 나오네. 이제 시작했으니 5월까지는 도다리쑥국 맛볼 수 있을기다. 5월이 지나면 쑥이 너무 뻐세서(억세서) 맛이 없다."

냄비 물이 끓자 도다리를 넣는다. 도다리가 대충 익었을 무렵 소금, 다진 마늘, 어슷 썬 풋고추를 넣고 된장을 조금 풀었다. 된장을 풀지 않는 식당도 있고 맹물 대신 쌀뜨물을 쓰는 식당도 있다. 만드는 이마다 도다리쑥국 맛있게 끓이는 노하우가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도다리 맛을 가리지 않게 양념을 너무 세지 않게 한다는 원칙은 같다. 통영식당(055-647-0188) 한산식당(055-644-5828) 분소식당(055-644-0495) 터미널회식당(055-641-0711) 등이 이름 났다. 1인분 1만~1만2000원쯤 한다.

도다리가 다 익었을 무렵 유명숙씨가 해쑥을 한 움큼 집어넣고는 가스불을 딱 껐다. 푸르스름 서늘한 옥빛이 감도는 맑은 국물에서 쑥향이 진하게 올라온다. 한 숟갈 퍼서 입에 넣었다. 달고도 담백한 국물이 입 안을 적신다. 쑥향이 입에서 코로, 온몸으로 퍼지는 듯하다. 새하얀 도다리 살은 여리고 촉촉하다. 이리는 색깔뿐 아니라 촉감마저 크림과 비슷하다. 씹을 틈도 없이 녹아 사라지면서 진하고 고소한 맛만 입에 남는다. 봄을 먹을 수 있다면 이런 맛일 수밖에 없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허겁지겁 봄 한 그릇을 비웠다.


[주말매거진] 제철 만난 도다리와 해쑥의 행복한 만남
주말매거진 팀의 평가로 엄선한, 통영 맛집 3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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