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포장지에 싸인 청춘의 고민

24일 개봉하는 영화 '마이 블랙 미니드레스'는 색색의 설탕을 잔뜩 묻힌 퍼석퍼석한 도넛 같다. 맛있어 보여서 한입 베어 물었는데 강렬한 단맛만 혀끝에 맴돌고 마는 것이다. 이 영화의 원작소설 '나의 블랙 미니드레스'에선 20대 여자들의 욕망과 고민이 절절하게 묻어나지만 영화는 반짝거리는 얄팍한 욕망만 보여주려다 말았다. 영화는 대학만 졸업하면 멋진 인생이 기다릴 것이라 믿었던 유민(윤은혜) 혜지(박한별) 수진(차예련) 민희(유인나)가 대학 졸업 후 겪는 방황과 고민을 그렸다. 22일 원작소설 작가 김민서(26)씨와 함께 영화를 봤다.

기자 소설을 읽을 땐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는데 영화는 그렇질 않네요. 90만원이 넘는 원피스를 사고 클럽에 출근도장을 찍는 이 20대 여자들의 고민이란 게 또 하나의 사치로밖에 보이질 않던데….

김 소설을 영화로 만든다고 했을 때 걱정을 많이 했어요. 소설에서 말하려고 하는 건 묻혀버리고 너무 화려한 볼거리만 부각되는 것 같아서요.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란 여자' 정도로 표현하고 싶었는데 영화에선 훨씬 과장됐죠. 유민이 사는 저 원피스도 원작 소설에서는 15만원인데 애초에 각본에선 200만원이었어요. 제가 얘기해서 100만원 이하로 낮춰진 거죠. 러닝타임이 있는 상업영화고 볼거리도 강조해야 하니까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기자 영화 속 수진이 오디션 볼 때 심사위원이 "요즘 그 정도 연기는 일반인도 하는 거 알죠"라고 하잖아요. 여기 나오는 여배우들의 연기야말로 일반인도 다 하는 수준 아닌가요.

김 전 배우들이 제가 생각한 캐릭터와 잘 어울려서 마음에 들었는데요. 배우 네 명의 이미지가 캐릭터와 맞았거든요. 특히 박한별씨는 완전 '혜지'였어요. (노는 거 좋아하고 화려한 생활을 즐기는) 혜지의 캐릭터가 너무 강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오히려 여자들의 '워너비'가 된 듯해요.

기자 누구도 생계 걱정은 전혀 하지 않는 주인공들의 상황이, 등록금도 내지 못해 쩔쩔매는 요즘 20대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요.

김 제가 얘기하고 싶은 건 부(富)나 외모와 상관없이 20대 여자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불안이에요. 이상과 현실의 괴리죠. 대학만 졸업하면 다들 알 만한 괜찮은 직장에 다니면서 평일엔 커리어우먼처럼 멋지게 빼입고, 주말엔 고급 레스토랑에서 브런치를 먹을 줄 알았죠. 설령 취업을 한다고 해도 현실은 이상과 또 다르잖아요.

기자 유민(윤은혜)이 오랫동안 사귄 남자친구가 생일날 김밥집에 데려가고 모텔비를 못 내자 무능력자라고 차버리는 장면에서 좀 슬프긴 했어요.

김 요즘 20대 여자가 속물적이라기보단 '욕망하는 세대'인 거죠. 어렸을 때부터 더 좋은 걸 차지하기 위한 경쟁을 해오며 살았으니까요. 부족한 거 없는데도 계속 욕망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된 거죠.

기자 영화를 본 중년 남성 중에선 "요즘 젊은 여자들은 저렇게 남자랑 쉽게 자냐"고 한 사람도 있어요.

김 그런 얘기는 20대가 아닌 사람들이나 하는 거 아녜요? 20대 여자들이 모이면 하는 얘기는 '성(性)'이 아니라 '사랑'이에요. 속물이다 뭐다 해도 순수하게 사랑하고 싶은 마음을 여전히 한편에 갖고 있어요. 아마 저희 어머니 세대도 20대에는 친구들과 그런 얘기 했을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