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LG배 세계기왕전] 허망한 錯覺

〈제11보〉(114~123)=쿵제의 치명적 약점으로 꼽히는 게 하나 있다. 초읽기에 들어가면 정신 못 차리고 헤맨다는 것. 쿵제 정도의 세계적 기사들 중엔 초읽기 속에서도 눈 하나 깜짝 않고 오히려 시간 많은 상대를 혼내주는 기사가 적지 않다. 쿵제의 그 같은 약점을 감안하더라도 지금부터 좀 심한 엔딩 신이 펼쳐진다.

하변에서 승부 패(覇)가 벌어진 장면. 흑▲의 팻감에 백은 듣지 않고 114로 때려냈다. 좌상귀 흑이 산다면 백의 대 손해, 살지 못한다면 백의 승리다. 어느 쪽이건 한 사람은 판단착오인 셈. 121까지 적의 안방에서 흑 침입군이 떵떵거리고 살았고 그 순간 바둑도 끝났다. 115가 이 형태에서 흑을 삶으로 이끄는 유일한 급소. 116 때 117도 정확했다. 아무리 초읽기 와중이라지만 이 정도를 못 봤다면 쿵제답지 않다.

백은 114로 참고도 1로 받아야 했다. 이후 20까지가 백 최선의 그림(5 11 17…△, 8 14 20…2). 어차피 총알(팻감) 부족으로 백이 이 바둑을 이기는 길은 없다(백A 팻감은 흑이 듣지 않는다). 그래도 이렇게 두어가면서 기회를 노렸어야 했다는 결론. 쿵제가 122로 한 번 호흡을 조절하더니 고개를 떨어뜨리며 패배를 선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