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퍼팅 한방에 1억원 날아갔다

"60cm 내리막 퍼팅보다 두려운 것은 없다."

미국 프로골프(PGA)투어 최다승인 82승을 기록했던 샘 스니드(1912~2002 ·미국)가 골프에서 가장 어려운 샷으로 꼽았던 건 짧은 내리막 퍼팅이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미국)도 "때론 18m 퍼팅보다 1m 퍼팅이 더 어려울 때가 있다"고 했다. 정상급 프로의 경우 성공률 90%를 넘는 1m 안팎의 짧은 퍼팅도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중압감을 갖게 되면 가장 까다로운 샷으로 변하는 것이다.

28일 미 LPGA투어 KIA클래식에서 시즌 첫 승을 노리던 신지애에게도 그랬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시티 오브 인더스트리의 인더스트리힐스골프장(파73)에서 열린 KIA클래식 4라운드 18번홀(파5). 신지애는 1.2m 내리막 퍼팅을 남겨놓고 있었고 산드라 갈(독일)은 70cm 남짓한 오르막 퍼팅을 기다리고 있었다. 15언더파 공동 선두를 달리던 두 선수 모두 버디를 잡아 승부는 연장으로 넘어갈 것으로 예상했다.

신중하게 퍼팅 라인을 읽은 신지애가 어드레스에 들어가자 그린을 에워싼 갤러리가 숨을 죽였다. 너무 긴장한 탓일까. 평소 과감하게 퍼팅하던 신지애가 어드레스를 풀더니 뒤로 물러났다. 수백 명의 한인(韓人) 갤러리가 신지애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잠시 숨을 고른 신지애는 다시 어드레스를 하고 퍼팅을 했다. 하지만 조금 강하게 친 공은 홀컵을 타고 돌아 옆으로 흘렀다. 신지애는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가볍게 버디 퍼팅을 성공한 갈이 16언더파 276타를 기록, 신지애(15언더파)를 1타 차로 제쳤다.

2008년 LPGA에 데뷔한 갈은 첫 우승을 차지했다. 우승 상금이 25만5000달러(약 2억8400만원), 2위 상금이 15만8182달러(약 1억7600만원). 신지애는 마지막 퍼트 실패로 약 1억원의 손해를 본 셈이다.

신지애는 "(18번홀 퍼팅이) 내리막이어서 많이 긴장했던 것 같다. 오늘 퍼팅이 전체적으로 잘 안 돼서 그만큼 부담감도 컸다"고 털어놓았다.

마지막 라운드에 강해 '파이널 퀸'이란 별명을 가진 승부사 신지애가 역전패를 당한 것은 퍼팅 때문이었다. 신지애는 이날 갈에게 1타 앞선 15언더파 단독 선두로 4라운드를 시작했지만 2타를 줄인 갈에게 역전패를 당했다.

이번 대회에서 신지애는 평소보다 10야드 이상 늘어난 평균 252야드의 드라이버샷과 정교한 아이언샷을 선보였다. 하지만 신지애의 이날 퍼트 수는 33개, 갈은 25개에 불과했다.

신지애는 이번 대회에서 홀컵 뒷벽을 때리며 들어가는 과감한 '신지애 퍼팅'을 선보이지 못했다. "워낙 그린이 빠르고 까다로워 조심스러웠다"는 설명이지만 퍼팅에 대한 자신감이 흔들렸던 것도 원인이었다.

아버지 신제섭씨는 "올 시즌을 앞두고 시력 교정(라식) 수술을 한 (신)지애가 아직 퍼팅 라인을 읽는 데 부담을 느낄 때가 있다"고 했다.

필 미켈슨(미국)은 이 같은 '짧은 퍼팅의 잔혹사'에 대표적으로 등장하는 이름이다. 2004년 US오픈 마지막 라운드에서 16번홀까지 공동 선두를 달리던 미켈슨은 17번홀(파3)에서 티샷을 벙커에 빠뜨렸다. 절묘한 벙커샷으로 홀 1.2m에 공을 붙였지만 첫 번째 퍼트가 70cm를 지나갔고 두 번째 퍼트도 홀컵을 돌아 나오며 더블 보기로 우승 경쟁에서 탈락했다. 메이저 대회에서 짧은 퍼팅의 비극은 되풀이됐다. 1970년 브리티시오픈에서 더그 샌더스(미국)가 60cm 퍼트에 실패해 우승을 놓쳤고 2001년 US오픈에서는 스튜어트 싱크(미국)가 60cm 퍼트를 놓쳐 연장전에 합류하지 못했다.

'골프, 자신감의 게임'이란 책을 쓴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 밥 로텔라 박사는 "퍼팅은 자신감과 일관성이 중요하다"며 "지나치게 주의를 기울이는 것도 의심에서 비롯되는 오류"라고 말했다.

김인경이 4라운드에서 3언더파를 치며 크리스티 커(미국)와 함께 공동 3위(11언더파)로 대회를 마쳤다. 최나연은 세계 1위 청야니(대만)와 함께 공동 5위(9언더파)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