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뜩하고 불편한… '일본의 고백'

세상은 어떤 논리로도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부조리할 때가 있다. 생명의 무게가 비누방울 만큼이나 가볍게 여겨지는 경우도 있다. 아이들을 파멸로 몰아넣는 어른들, 죄의식 따위는 찾아보기 힘든 아이들….

일본 영화 '고백'은 이런 불편한 진실을 정면으로 들춰낸다. 대중적인 구석을 찾아보기 힘든 이 영화가 일본에서 4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도 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담함과 그것을 전달하는 세련된 방식 때문이다.

중학교에서 살인이 일어났다. 영화 시작 10분 만에 이 학교 교사 유코(마쓰 다카코)는 종업식에서 아이들에게 "내 딸은 우리 반 학생에게 살해당했습니다"라고 말한다. 이어 살인자가 우등생 슈야(니시 유키토)와 외톨이 나오키(후지와라 가오루)라는 것과 그들의 범행 방법을 밝힌다. 유코는 두 살인범이 마신 우유에 에이즈 환자의 피를 넣었다는 말을 남기고 교단을 떠난다. 범인들이 '촉법소년(형법 법령에 저촉되는 행위를 했지만 형사 처벌은 할 수 없는 만 10세 이상 14세 미만의 소년)'이기 때문에 스스로 그들을 벌한 것이다.

영화는 이후 한 시간 동안 현대 일본사회의 뜨거운 문제들을 서늘하게 보여준다.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버린 자의식을 갖고 있지만 죄의식은 잃어버린 13세 아이들. 이들을 이렇게 만든, 아이들과 소통할 수 없는 어른들. '교실'이란 작은 사회가 보여주는 집단 광기와 뒤틀린 모자(母子) 관계.

미나토 가나에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소설에선 교사와 범인들, 범인의 가족과 친구의 고백이 차례로 나오고, 그 사이에서 사건의 복선과 인물의 심리 변화가 드러난다. 영화는 도입부만 소설처럼 교사의 고백으로 시작하고, 나머지 인물들의 고백은 순서와 시점이 얽히면서 진행된다. 소설의 긴장감을 잃지 않으면서도 등장인물이 어떻게 그런 정신상태를 갖게 됐는지, 그 상황에서 왜 그런 행동을 택했는지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CF 연출 출신인 감독 나카시마 테쓰야는 전작(前作)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서 보여줬던 장기를 그대로 발휘한다. 독백으로 설명하기 힘든 부분을 '스타일'로 보여줌으로써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더욱 선명하게 부각시키는 식이다. 과장된 슬로우 모션, 검푸른 색이나 회색처럼 극단적으로 어두운 색조가 예다. 배경음악으로 보리스, 라디오헤드, 더엑스엑스의 음울하고 몽환적인 곡들을 쓴 것도 영화에 긴장감을 주고 관객들을 흡입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이처럼 스토리와 스타일이 극단적인데도 영화가 현실감을 갖는 데는 배우들의 힘이 크다. 참하게 생긴 마쓰 다카코가 차분한 목소리로 조곤조곤 복수를 얘기해 영화를 더 서늘하게 만들었다. 이와이 ?지 감독의 '4월 이야기'에 나왔던 그 청순한 여대생이다. 37명의 학생 배우들은 실제 13세 청소년 1000여명 가운데 뽑았다. 주연급인 슈야와 나오키, 미즈키 말고는 5초 이상 얼굴이 나오는 아이가 없는데도 37명이 웃고 찡그리는 모습은 잔상으로 오래 남는다. 31일 개봉. 19세 이상 관람가.

[이것이 포인트]

#장면
발랄한 배경음악과 함께 37명의 아이들이 어두컴컴한 교실에서 해맑은 표정으로 우유를 마신다. 관객에겐 앞을 알 수 없는 공포감과 긴장감을 준다.

#대사
"이제부터 당신의 갱생 첫걸음이 시작된 겁니다…라나 뭐라나"(슈야가 만든 폭탄으로 슈야의 어머니를 죽게 한 다음 유코가 슈야에게 하는 말. 슈야는 유코의 딸을 죽인 범인)

#해외평
"냉혹하고 스타일리시하고 잔인한, 교향곡과 같은 영화"(버라이어티)

#이런 분들에게 추천
사춘기에 접어든 10대 자녀의 이해할 수 없는 언행 때문에 속이 답답한 부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