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LG배 세계기왕전] 포커페이스

〈제5보〉(46~54)=대국장 안은 심산유곡 절간처럼 고즈넉하다. 쿵제가 풀어놓은 손목시계의 째각거림만 아니면 둘의 심장박동 소리까지 들려올 것 같다.

내면(內面)의 들끓는 투지와 적의(敵意)는 오직 둘의 손끝을 통해서만 절제된 동작으로 분출될 뿐이다. 내부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도 그들에겐 중요한 기술로 꼽힌다. 이른바 '포커페이스'다. 얼굴만 봐선 누가 유리한지 알 수가 없다.

46은 우세를 의식한 온건책. 하지만 지나친 '부자 몸조심'이란 평가가 쏟아졌다. 몸을 사리지 말고 참고1도 5까지 빵때림을 받아 먹으라는 것. 7에 손을 돌리면 오히려 흑이 포위된 모습이다. 흑4로 5면 백6으로 틀을 잡아 실전보다 훨씬 좋다.

49까지 타협. 흑은 우변도 챙기고 중앙도 키워 많이 추격했다. 이때 다시 백에게서 50이란 완착이 나온다. 참고2도 1의 응급조치 후 3이 멋진 행마. 8의 절단은 9 다음 A, B를 맞봐 흑이 못 견딘다. 53까지 중앙 흑세가 두터워지자 백은 54란 우회 카드를 뽑아들었다. 승부처에 도달했음을 본능적으로 느꼈음일까, 무표정하던 쿵제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