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LG배 세계기왕전] 간지러움

〈제6보〉(55~64)=큰 승부사가 되기 위한 숱한 요건들 중 빼놓아선 안 될 것이 '뱃심'이다. 약한 말을 돌보지 않고 과감히 손을 빼 집을 챙기자 상대가 흥분해 자멸의 길로 접어들더라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신중히 둔답시고 소심하게 움츠리다가 기회를 놓치는 경우도 흔하다. 바둑계에선 이런 뱃심 부족형 기사들을 '새가슴'이라고 부른다.

백△에 대해 최규병 九단은 '간지러운 수'란 표현을 썼다. "간지럽다고 잘못 긁으면 엉뚱한 상처가 날 수 있는 자리"라고도 했다. 55는 부분적으론 참고1도 1이 정수. 그러나 그 순간 2로 씌워가면 흑은 꼼짝없이 백이 쳐놓은 덫에 갇힌다. 그래서 55로 두었지만 대신 하변엔 참고2도 1 이하 9까지의 뒷맛이 남게 됐다. 이렇게 된다면 하변 백진에 침입할 기회도 물 건너간다. 과연 간질간질한 수단들이 도처에 숨어 있다.

56은 부분적으론 상당한 요처. 하지만 우변 백을 보강하지 않고 손을 뺀 배짱이 놀랍다. "잡을 수 있으면 잡아보라"는 도발이기도 하다. 이쯤 되면 흑도 뭔가 보여줘야 체면이 선다. 60까지의 예정코스를 거쳐 61로 상변 쪽 셔터를 철컥 내렸다. 우중앙 백 대마는 자체론 2집 마련이 불가능한 모습. 64때 흑이 준비한 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