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때 헤어진 국군형제, 60년 만에 유해로 만나다

1951년 9월 24일 강원도 양구 백석산 901고지에선 휴전협상의 유리한 진행을 위해 백석산 탈취 작전이 치열했다. 참호 속에서 코앞 적들의 동향을 살피며 꼬박 밤을 새우는 이천우 하사(현 상병)는 남쪽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작년 이맘때 집을 떠날 때 마을 입구까지 따라 나오며 눈물짓던 홀어머니는 잘 계신지…. 한 달 먼저 입대해 1사단에 배치된 만우 형님은 무사한지…."

어느새 아침이 밝고 이 하사가 속한 9중대에 공격 선봉에 서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이 하사와 부대원들은 890고지를 향해 달려갔다. 아군의 포격이 시작됐고 적 포탄도 쏟아졌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비명소리…. 가파른 능선 곳곳엔 적과 아군의 시체가 흩어져 있었다. 적의 기관총 진지가 앞을 막았다. 이 하사는 동료 김 하사와 소대원의 엄호를 받으며 옆으로 돌아서 기관총 진지에 수류탄을 던져 적을 섬멸했다.

고지 정상에 올라 주변을 수색하던 이 하사 앞에 17세나 됨 직한 북한군 병사가 겁에 질려 손을 번쩍 들었다. 이 하사가 중대본부에 이 포로를 인계하고 소대로 돌아가려 작은 언덕을 넘는 순간 "따따따!" 총소리가 울렸다. 40여m 앞 바위틈에 숨었던 잔류 적병이 쏜 총탄이 이 하사의 가슴을 관통했다. 눈물짓던 어머니, 밥짓는 연기 모락모락 피어나는 고향 마을의 모습이 그의 눈에 스쳤다. 그렇게 이 하사는 19살 꽃다운 나이에 스러져 갔다.

이 하사 유해는 49년 만인 작년 10월 강원도 양구군 방산면 백석산 남동쪽 3㎞ 지점에서 국방부 국군유해발굴감식단에 의해 발굴됐고 최근 신원이 확인됐다. 5일 오후 4시 30분쯤 부산 수영구 망미2동 이 하사의 조카 이명덕(李明德·61)씨 집에 이재수 육군 53사단장과 박현욱 수영구청장, 오진영 부산보훈청장이 찾아가 이 하사의 전사자 신원확인 통지서와 위로패를 전달했다. 통지서엔 1계급 진급 추서된 이등중사 계급이 적혀 있었다. 전사한 지 60년 만이었다. 법이 바뀌어 지금까지 전화나 서면으로 하던 전사자 신원확인 통보 절차가 지역 사단장과 행정관서장이 직접 알려주게 된 것이다.

"고인이 목에 걸었던 인식표(군번과 영문 이름이 적힌 명찰)와 적과 싸울 때 썼던 탄환, 고인의 관을 덮었던 태극기를 유품으로 전달해드립니다." 정부 관계자들이 유품을 전달하자 조카 이씨는 "막내 삼촌!"이라고 외마디 소리치곤 말을 잇지 못했다.

유해발굴감식단장인 박신한 대령은 가족들에게 한 가지 더 뜻밖의 통보를 했다. "고 이 이등중사의 유해는 형인 고 이만우 하사가 안장된 서울현충원 묘역 옆에 함께 모실겁니다." 이 하사보다 한달 앞인 1950년 8월 27일 입대한 형 고 이만우 하사는 1951년 5월 7일 봉일천 전투에서 전사했다. 형제는 무공이 뛰어나 둘다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동생은 2개, 형은 1개를 받았다. 둘은 4남3녀의 남매 중 여섯, 일곱번째였다.

박 단장은 "이미 꽉찬 서울현충원에 모시기 힘들지만 '묘역의 열이 흐트러지는 한이 있어도 형제를 만나게 하자'는 뜻에서 함께 안장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형제가 현충원에 함께 묻히는 것은 이들이 처음이다.

조카 이씨는 "평생 두 아들을 전장에 보내고 시신마저 찾지 못해 눈물과 한숨으로 지내다 돌아가신 할머니께서 정말 기뻐하시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씨는 "이번 주말 경북 청도 선산의 할머니 묘소를 찾아 이 기쁜 소식을 전해드려야겠다"고도 했다.

다른 조카 이성덕씨는 "6·25 당시 만우 삼촌의 유해라고 보내온 것이 있어 만우 삼촌이 서울 현충원에 안장됐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때문에 고 이만우 하사는 이명덕씨 동생인 이진득(57·부산 만덕동)씨가, 고 이천우 이등중사는 막내 동생인 이성덕씨가 매년 음력 9월 9일 제사를 지내왔다. 이성덕씨는 "아버지가 '어른들을 잘 모시면 좋으니 너희들이 제사를 지내라'고 하셨다"고 했다.

이날 이명덕씨 형제는 막내 삼촌이 서울 현충원에 안장되는 날, 가족 모두 서울로 올라가 첫 제사를 올리기로 했다. 유해발굴감식단 박 단장은 "국가의 위기를 구하고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이들 형제를 '호국형제'로 명명, 영원히 후세의 본이 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