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한가요? 우리가 지나온 시절입니다

비키니 차림의 고은아, 한복을 차려입은 패티김, 맥주캔을 한 손에 든 남정임, 팔짱을 끼고 먼 산 바라보는 신성일, 골프채 곁에서 미소 짓는 엄앵란….

한국 광고사진계의 대부로 불리는 원로 사진가 김한용(87)씨가 최근 펴낸 '꿈의 공장'(눈빛)엔 이제는 잊힌 시절을 담은 컬러·흑백사진 400여컷이 그때 그 시절로 안내한다. 1959년 서울 충무로에 '김한용사진연구소'를 열고 본격 광고사진을 촬영한 김씨의 작품에는 1960~70년대 브레이크 없이 달려온 한국의 급속한 경제성장과 변화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지금 보면 유치하겠지만 그게 우리가 지나온 시절"이라는 김씨의 말처럼 약품부터 화장품·냉장고·주류· 의류 등 다양한 광고사진과 달력 사진 등에는 당시 서민들의 선망이 담겨 있다. 책 제목 '꿈의 공장'은 그래서 붙여졌다.

1부엔 최은희 김진규 이대엽 신성일 엄앵란 윤정희 등 당대의 스타들과 정윤희 장미희 유지인 등 1970년대 이른바 '트로이카' 여배우들 그리고 노주현 이덕화 김자옥 원미경 임예진 등 당대의 청춘스타들의 모습도 생생하다. 2부엔 사진작가로서 김씨의 면모를 볼 수 있는 흑백사진 130여점이 실렸다. 이낙훈 이순재 도금봉 여운계 오수미 정미조 정훈희 바니걸스 등 연예인은 물론이고 소설가 김동리 박인환 김광주, 연극인 이해랑 김동원, 1950년대 초반 부산 피란시절의 화가 이중섭, 정치깡패 임화수, 국회의원 김두한 등의 한창때가 실렸다.

김씨는 "촬영한 여배우 중에 누가 가장 미인이었나?"라는 질문에 "아무도 없다"고 했다. "전쟁을 겪었고, 모두가 가난하던 시절이라 그런지 누구나 표정이 슬펐다. 광고사진은 슬프면 안 되기 때문에 고생 많이 했다.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에겐 슬픈 그늘이 없다. 그게 과거와 요즘의 가장 큰 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