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나는 백제의 魂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1971년 7월 5일 충남 공주시 송산리 백제 고분군. 장마철 침수를 막기 위한 배수로 공사가 일주일째 계속되고 있었다. 무심코 땅을 파던 인부의 삽날에 단단한 벽돌 하나가 부딪혔다. 아치형 벽돌무덤(전축분·塼築墳)의 입구가 보였다. "공사 중지!" 황급히 구성된 발굴조사단이 입구를 뜯어내자 무덤 주인을 알리는 지석(誌石)이 눈에 띈다. '영동대장군백제사마왕(寧東大將軍百濟斯麻王)'. "사마왕? 아 아… 무령왕이다!" 백제 제25대 무령왕(武寧王·재위 501~523)과 왕비의 합장무덤이 1450년의 긴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이었다.

'20세기 한국 고고학 최대의 발굴 성과'로 꼽히는 백제 무령왕릉 발굴이 올해로 40주년을 맞았다. 삼국시대를 통틀어 유일하게 무덤 주인공이 확인된 왕릉이 도굴되지 않은 채 발견된 것은 천우신조. 무덤 안에서는 금으로 만든 관 장식, 용과 봉황이 장식된 큰 칼, 글씨가 새겨진 팔찌 등 108종 4687점의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백자 등잔, 청자육이호(靑磁六耳壺) 등 수입된 중국 도자기도 9점 나왔고, 중국 남조 양(梁)나라 양식인 아치형 전축분도 학계를 흥분시켰다. 무령왕릉 발굴은 꺼져가던 백제 역사의 맥박을 되살렸을 뿐 아니라 고대 동아시아의 찬란한 문명 교류사까지 복원해낸 것이다.

사실 무령왕릉 발굴은 '사상 최악의 졸속 발굴'이라는 오명도 함께 갖고 있다. 당시 발굴 현장에 취재진과 구경꾼이 몰려들면서 청동 숟가락이 부러지는 등 통제 불능의 상황으로 치닫자 다급해진 발굴단은 철야 작업을 강행, 큰 유물만 대충 수습하고 나머지는 바닥에 엉킨 풀뿌리째 자루에 쓸어담아 나왔다. 하룻밤 새 왕릉 발굴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발굴단장이었던 고(故) 김원룡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생전에 "나의 실수였고 고고학자로서 평생의 아쉬움의 하나다. 나라와 국민에게 큰 죄를 저질렀다"고 고백한 바 있다.

올해 무령왕릉 발굴 40주년을 맞아 다양한 기념행사가 열린다. 국립공주박물관(관장 김승희)은 10월 7일부터 내년 1월 29일까지 개최하는 특별전 '무령왕릉의 신(新)발견'(가제)을 통해 미공개 자료들과 새롭게 정리된 출토 유물들을 조명할 계획이다. 10월 28~29일에는 국립공주박물관·공주시청·공주대학교가 공동으로 마련하는 국제 학술대회가 열린다. '무령왕릉의 국제성'을 주제로 한·중·일 고고학자·미술사학자·역사학자 등이 대거 참석할 예정이다. 6월 말에는 발굴에 참여한 원로들과 관계자들의 좌담회도 열린다.

권오영 한신대 교수(한국고대사)는 "무령왕릉 연구가 발견 당시의 상황에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은 우리 학계가 정말로 반성해야 할 일"이라며 "발굴 40주년을 맞아 깊이 있는 연구 성과가 나오길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