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에 비친 '모던 조선'] [15] 맑스걸, 매니큐어걸에 키스걸까지, '모던 걸' 전성시대

"이발사가 머리를 다 깎자 부드러운 여자의 손가락이 슬그머니 손에 부닥친다. 감전한 것처럼 깜짝 놀라 돌아보니 아름다운 여자가 생끗 웃지 않는가. '손톱을 깎아드릴까요?' 목소리까지 구슬을 굴리는 것같다. 무어라고 대답할지 모르는 사이 여자는 팔을 자신의 무릎에 올려놓고 일을 시작한다…."

조선일보 1931년 1월 4일자 '에로·그로·넌센스 난무한 제첨단상(諸尖端相)-1930년 첨단직업'이라는 제목의 기사다. 이발소에서 손님의 손톱을 다듬어주는 신종 직업여성의 등장을 알리며 이를 '매니큐어걸'이라 불렀다.

1920~30년대는 각종 '모던 걸'의 전성시대였다. 사회주의 운동에 뛰어들어 동지적 연애관을 신봉하는 '맑스걸' '엥겔스걸'이 지식계층의 모던 걸이었다면, 급격한 도시화는 부잣집 '식모(食母)'나 공장노동자가 전부였던 여성 직업군(群)에 새로운 직업들을 만들어냈다.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어주는 '가솔린걸', 버스 안내양인 '버스걸', 백화점의 '엘리베이터걸'이 그들이었다.

조선박람회 개막을 앞둔 1929년 9월 어느 날, 회현동 조선은행(지금의 한국은행) 앞이 인파로 뒤덮였다. '살아있는 마네킹', 이른바 '마네킹걸'을 보려는 사람들이었다. 인형처럼 짙은 화장을 하고 광고판을 든 채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고 서 있는 마네킹걸은 여태껏 없었던 볼거리였다. 조선일보는 "진고개의 일본인 상인들이 마네킹걸을 데려다가 서울 한복판에서 착각된 인간의 유흥을 시작하였나니 날마다 목불인견(目不忍見)의 참극을 연출함으로…"라고 비판했다.(1929년 9월 7일자)

그 해 조선박람회에서는 또 다른 '걸'이 화제에 올랐다. 요즘 성행하는 '키스방'의 원조격이라고 할 '키스걸'이었다. 조선일보는 "박람회 여간수(도우미) 중에 일금 오십전에 키스를 팔다가 내쫓긴 여자가 있다. 원인은 생활난이라 할 수 있겠지만 여자들의 직업으로 꽤 비싼 직업은 장차로 번식될 키스걸일 것"(1929년 9월 22일자)이라고 썼다.

1930년대에도 여성의 웃음이나 성(性)을 파는 신종 직업이 다양하게 등장했다. 가장 흔한 것은 '카페걸'이었다. 조선일보는 "경성의 공기를 환란으로 흐리게 하는 청등홍등의 카페에 여급이 무려 1000여 명"이라며 "환락의 경성! 살벌의 경성!"(1931년 9월 14일자)이라고 개탄했지만 카페걸, 키스걸에 이어 이름도 희한한 '스틱걸'까지 등장했다. 남성들을 유혹해 팔짱을 끼고 가는 게 지팡이를 대신하는 것 같다고 해서 이름 붙은 거리의 여성이다. 1935년 5월 28일자 조선일보는 "요즈음 종로를 중심으로 밤마다 상대를 갈아가지고 산보를 하는 수상한 모던걸이 있어서 경찰이 엄중히 취조했더니 거리의 사나이들을 낚아서 함께 산보를 하고 혹은 여관에 함께 있다가 물건을 훔치는 절도전문 스틱걸이었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