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부담·물가 급등… 그 속에 빠진 금리

화학 관련 대기업체의 이모(44) 부장은 재작년 서울의 아파트를 사느라 은행빚 3억원을 지고 요즘 원리금으로 매달 400만원씩 갚고 있다. 맞벌이하는 아내 월급까지 합해 월 700만원을 벌고 있지만, 빚을 갚고 아파트 관리비, 중학생 자녀 둘의 학원비를 대고 나면 생활비가 빠듯하다. 이씨는 "당장 먹고 살기가 힘든데 금리마저 더 오르면 큰일"이라며 "그런데 부동산 값은 떨어지니 사는 게 우울 그 자체"라고 말했다.

경기도 하남시에 사는 김 과장(37)은 오랜만에 지난 주말 아내와 마트에서 장 보러 나갔다가 치솟은 물가에 깜짝 놀랐다. 작년엔 10만원이면 일주일치 장을 충분히 봤는데, 이번엔 비슷한 물건을 사고도 20만원 가까이나 들었기 때문이다. 김 과장은 "물가가 많이 올랐다고 얘기만 듣다가 직접 겪어 보니 장난이 아니다"며 "아내와 맞벌이를 하고 있는데 저축은 언감생심에 서울 입성은 꿈도 못 꿀 일"이라고 말했다.

12일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 정례회의를 앞두고 한국은행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이 부장의 경우처럼 가계 이자 부담은 금리를 선뜻 올릴 수 없는 이유이지만, 물가 때문에 고민하는 김 과장의 경우를 보면 금리를 올려서 물가를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4월 금리 인상 여부가 올해 가장 쉽지 않은 결정이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채권 전문가 90% 4월 기준금리 동결 예상

시장에선 한국은행이 4월엔 쉽게 금리를 올리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압도적으로 많다. 10일 조선비즈(Chosunbiz.com)가 12명의 증권사 채권 애널리스트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11명(91%)이 금리 동결을 예상했다. 8일 금융투자협회 설문에서도 기준금리 동결을 예상한 채권 전문가 비율이 89%에 달했다. 47%가 금리 동결을 점쳤던 3월에 비해 42%포인트 늘었다. 노무라증권·모건스탠리·씨티그룹 등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4월이 아니라 5월에 금리가 인상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에 금리 인상이 없을 것으로 예상하는 주된 근거로 글로벌 경기가 아직 회복하지 못하고 있고, 가계의 이자 부담이 큰 상태에서 금리를 너무 빨리 올릴 경우 경기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꼽는다. 한은은 작년 11월 이후 두 달에 한 번씩 금리를 올려 왔고, 최근엔 3월에 0.25%포인트 올렸다. 따라서 4월엔 건너뛸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박주영 산업은행경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작년 6%대의 경제성장률을 이끄는 데 내수가 큰 역할을 했다"며 "가계 부채가 늘면 민간 소비가 위축돼 내수 경기 침체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물가는 환율이 아니라 금리로 잡아야" 의견도

정부가 물가를 잡기 위해 환율 하락(원화 가치 상승)을 암묵적으로 용인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금리를 올릴 필요가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지난달 말 한국은행 경제동향 간담회에서 일부 경제 전문가들은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에게 "선제적으로 금리를 올려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잡아야 한다"고 조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중 일부는 "물가는 금리와 재정정책으로 잡아야지 환율정책을 써선 안 된다"고 말했다.

김현욱 한국개발연구원(KDI) 거시경제연구부장은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벗어났다는 기쁨에 도취된 나머지 물가가 오르는 것에 대해 금융당국이 선제적 대응을 하지 못했다"며 "기대 인플레가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지금이라도 금통위가 제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