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브랜드는 무엇입니까

김종학, 김창열, 배병우, 이우환. 이 인기작가 넷의 공통점은 작가 고유의 '트레이드마크'가 있다는 점이다. 김종학은 '설악산', 김창열은 '물방울', 배병우는 '소나무', 이우환은 '점'이다. 트레이드마크를 가진 작가의 인기는 절대적이다. "투자자들에게 신뢰도와 심리적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작가에게 트레이드마크란 기업 로고나 슬로건과 비슷하다.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은 "작가의 트레이드마크는 개인의 정체성을 넘어서 일반 상품의 '특허권'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작가들의 트레이드마크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특정 소재를 반복해 그리는 작가는 김지원(맨드라미), 윤병락(사과), 박성민(아이스 캡슐), 이정웅(붓) 등이 대표적. 재료와 기법이 트레이드 마크인 경우도 있다. 이동재는 쌀알·녹두·알약 같은 자그마한 알갱이를 캔버스에 붙이고, 지용호는 폐타이어를 이용해 조각한다. '아토마우스'의 이동기와 '동구리'의 권기수는 독특한 캐릭터를 만들었다.

확실한 트레이드마크를 가진 작가는 '자신만의 예술세계'가 있는 작가로 호평받는다. 그러나 작가의 고집인지, 시류에의 편승인지는 면밀히 따져볼 대목. 미술평론가 임근준씨는 "어떤 작가든 세월이 흐르면 어쩔 수 없이 '자기 브랜드화'의 단계를 거쳐 특정 종류의 작업에 '박제' 된다"며 "몇몇 젊은 작가들처럼 브랜드화된 작업만 하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8일 개막한 '기억의 미래를 좇는 사람들'전은 우리나라 블루칩 작가의 트레이드마크 작품을 중심으로 꾸며진다. 이번 전시에서는 김지원, 남경민, 도윤희, 박지현, 박진아, 신미경, 이광호, 이동기, 이동재, 이이남, 홍경택 등 소재·주제·기법 면에서 자신만의 뚜렷한 세계를 가진 작가 11명의 작품 50여점이 소개된다. 우리 작가들의 '집중화' 경향과 그 성과, 한계를 한눈에 보기 좋은 전시다.

서울과 런던을 오가며 활동하는 신미경은 비누가루를 반죽해 도자기를 빚는다. 빨간 비누가루를 사용해 베네치아 유리처럼 투명한 느낌을 주는 그릇들을 빚은 '고스트 시리즈' 등이 이번 전시에 나왔다.

남경민의 주된 관심사는 고풍스러운 촛대와 거울, 중후한 책장이 놓인 유럽풍의 실내. 작가는 책장에 카라바조, 렘브란트 등 바로크 화가들의 화집이 잔뜩 꽂혀 있고 '인생무상'을 상징하는 해골과 모래시계가 책상 위에 놓여 있는 '바로크 서재를 거닐다' 등을 내놓았다. 불붙은 향으로 종이에 구멍을 낸 박지현의 나무 그림, 선인장을 확대해 그려 동물적 느낌을 자아내는 이광호의 유화도 볼 수 있다.

▶'기억의 미래를 좇는 사람들'전. 가나아트센터, 5월 1일까지. (02) 720-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