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타고 '봄꽃' '봄맛' 찾아 거제도로 떠난다!
입력 : 2011.04.12 16:10
<김형우 기자의 맛있는 여행>
이즈음 우리 산하에 펼쳐진 꽃 사태가 장관이다. 산중 산수유에 가로수의 벚꽃, 고샅길 개나리 등 잿빛 대지엔 4월의 봄기운이 넘쳐흐른다.
대자연의 마술은 남녘땅에서 절정을 이룬다. 그중 남동해와 접한 거제도에는 갖은 봄꽃이 만발해 있다. 공곶이 바닷가의 노란 수선화며 ,학동~바람의 언덕에 핀 붉은 동백꽃, 노자산 고갯길에 흩날리는 하얀 벚꽃과 대금산의 연분홍 진달래 등 그야말로 곳곳에 봄꽃의 향연이 펼쳐지는 중이다.
화사한 상춘길에 미각도 놓칠 수 없다. 요즘 겨울 대구가 떠난 거제 외포에는 봄멸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부드럽고 고소한 멸치회 한 점에는 덩치 큰 고래 고기가 넘볼 수 없는 절대 미각이 담겨 있다. 유채꽃 만발한 신선대-바람의 언덕에서 만나는 바지락죽도 거제의 봄기운을 느끼기에 모자람이 없다. 지난 연말 거가대교의 개통으로 더 가까워진 거제도. 이른 아침 서울서 KTX를 타면 점심엔 풍성한 포구의 정취 속에 멸치의 부드러운 속살과 바지락의 쫄깃한 식감을 접할 수 있어 당일 별미기행지로도 거뜬하다. 거제도=글·사진 김형우 기자 hwkim@sportschosun.com
<화사한 봄기운, 봄의 풍광 속으로>
◆봄꽃 1 '공곶이 수선화'
▶'꽃보다 아름다운 인간의 열정'
거제도에는 최근 새로운 명물이 하나 등장했다. '공곶이 농원'이 그것이다. 바다에 접한 산자락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보태니컬 가든으로 가꿔져 있다. 겉에서 보면 멀쩡한 산이다. 하지만 그 안에는 비탈진 계단식 밭에서 수십 종, 수천 그루의 꽃과 나무가 생장하고 있다. 이곳에 피어난 꽃들이 더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농장주 강명식(80)-지상악(76) 노부부의 값진 노력의 결실이 담겨 있 때문이다. 이들 부부는 변변한 장비 없이 40여 년 동안 삽과 괭이만으로 4만여 평의 거대한 농장을 일궈냈다. 때문에 여느 관광농원과는 그 모습이 딴 판이다. 세련미 대신 인간의 땀 냄새가 솔솔 풍겨나는 그런 곳이다.
공곶이는 최근에야 '거제 8경'으로 지정됐다. 그만큼 외지인에게는 덜 알려진 곳이다. 바다 쪽 양지바른 산비탈에 자리한 데다 지금껏 변변한 진입로도 닦이지 않아 접근조차 어려웠기 때문이다. 근자에 들어 농장의 비경이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자 이제는 제법 너른 흙길도 닦아 놓았다. 하지만 워낙 가파른데다 비라도 내리면 땅이 질퍽해져 아래 예구마을에 차를 대고 20 여 분 산길을 걸어 올라가야 한다.
등에 땀이 꼽꼽이 밸 즈음 산마루에 오르면 내도와 예구포구가 눈앞에 펼쳐진다. 공곶이 해변의 비경을 감상한 후 본격 농원 구경에 나선다. 입구에서부터 붉고 하얀 동백이 터널을 이루고, 비탈에 마련된 계단식 밭에는 노란 수선화가 바다를 바라보며 고혹한 자태를 뽐낸다. 밭두덕 언덕배기에 피어오른 순백의 조팝꽃도 그 향기만큼이나 장관이다.
농원의 대표 수종은 종려나무. 부채살처럼 펼쳐진 종려나무의 싱싱한 잎사귀가 쪽빛 바다와 어우러져 이국적 풍광을 뽐낸다.
200m에 이르는 긴 동백터널을 지나 아래로 내려가면 바다와 만나는 수선화밭이 펼쳐진다. 영화 '종려나무숲'의 촬영 배경이었던 부부의 살림집 앞마당과 집 주변은 온통 수선화 밭이다. 수선화 재배면적 만 6600㎡(2000평)에 이르니 노란 꽃망울을 터뜨려 대는 수선화의 자태가 장관이다. 마침 수선화는 이즈음이 만개 시기다. 쪽빛 바다와 어우러진 수선화밭 주변에는 각지에서 몰려온 상춘객들이 멋진 풍광을 담아내기 위해 핸드폰을 들이대느라 분주하다.
농장 앞 몽돌 해변으로 나와도 운치가 있다. 한적한 해변에는 바람소리, 파도소리만 들릴 뿐이다. 공곶이 농원에는 벤치 등 변변한 편의시설 하나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애초 관광농원이 아닌 생활 터전으로 가꿨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공곶이를 찾는 사람들은 한결 같이 '진정한 생태 가든'이라며 감탄사를 쏟아낸다.
▶40년 청춘 바쳐 일군 파라다이스
공곶이 농원은 강명식 옹 부부가 허리가 휘고, 손가락마디가 다 굽도록 평생을 일궈 온 바닷가 정원이다. 공곶이는 5년 전 영화('종려나무숲') 촬영지가 되면서부터 세상밖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강씨가 공곶이를 처음 대한 것은 1956년. 처가가 있는 예구마을로 장가를 든 그가 혼배미사 후 우인들과 마을 뒷산을 산책하다 비경의 공곶이를 발견하면서 부터다. 경남 진주가 고향인 강씨는 수평선이 탁 트이고 멋진 절경을 갖춘 거제도의 매력에 순간 빠져 들고 말았다. 농토와 바다가 어우러진 모습이 너무 멋있어서 마치 '어미가 어린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듯한 그런 행복감'을 느꼈다고 한다.
6.25가 터져 군 입대를 한 강명식 청년은 전쟁 와중에 제대 순서가 밀려 군 생활을 무려 7년이나 해야 했다. 제대를 하고 고향집에 돌아오자 어머니는 "거제에 규수감이 있으니 다녀오라"고 했고, 강씨는 내키지 않는 섬으로 발길을 옮겨야 했다. 당시는 섬사람과 사귀면 동네 또래 사이에 따돌림을 받았을 정도로 섬 지역을 기피했다는 게 강씨의 설명이다. 그렇게 해서 거제와 첫 인연을 맺게 됐고, 수개 월 후 결혼과 함께 '기회의 땅' 공곶이를 발견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강씨는 10년간 각고의 노력 끝에 마침내 예전 점찍어 뒀던 공곶이 땅을 살 수 있었다.
하지만 땅은 구했어도 뭔가를 심을 종자돈이 없었다. 부산 버스정류장 앞 종묘사에 피어있는 수선화가 눈에 띄었지만 주머니 속에는 수선화 씨앗 두 알을 살 돈 밖에 없었다. 40여 년 전 그 두 알의 수선화는 공곶이 농원을 일구는 종자가 되주었다. 강씨는 40년 동안 수선화를 키우며 반찬값에 아이들 공부도 시키고 남는 물량은 전국의 각 성지, 양로원, 고아원, 보호시설 등에 무료로 보급해 왔다.
중도 포기의 고비도 있었다. 엄청난 시련에 40대에 백발이 되는 고통도 겪어야 했던 것. '한 그루만 있어도 대학을 보낸다'는 밀감나무를 70년대 초반 2000주를 심었지만 수확을 코앞에 두고 냉해로 다 잃고 말았다. 척박한 산에 가로세로, 깊이 각 1m로 홈을 파서 그 속에 나무를 심었는데, 그 고랑의 길이가 무려 4km에 이를 만큼 대역사였다. 손수 삽질을 해 심었던 터라 좌절의 고통도 컸다.
1~2년의 방황 끝에 동백나무를 잘라 묘목으로 키우며 재기에 나섰고, 이후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값진 농장을 일굴 수 있었다. 평생 고단한 심신에 변변히 돈 한 번 만져 보지 못했지만 아쉬움은 없다. 최선을 다 해 일군 농장이 '거제 8경'으로 선정되는가 하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강씨는 향후 공곶이가 여러 사람들의 편안한 쉼터가 되기를 바란다. 아울러 5~6대 선대 부터 독실한 카톨릭 신자인 그는 공곶이 일부를 성지화 할 예정이다. 때문에 돈 많은 사람들이 돈 싸들고 찾아와 호텔을 짓자는 등 화려한 개발 플랜을 제시해도 미동조차 하지 않는 그다.
◆봄꽃2 '노자산 벚꽃길'
거제에는 요즘 벚꽃도 볼만하다. 그중 학동 해변에서 노자산자락으로 이어지는 도로변에는 벚꽃길이 펼쳐져 장관을 이룬다. 학동몽돌해수욕장에서 노자산 청소년 수련관~정상 부근까지 이어진 도로는 요즘 꽃 터널을 이루고 있다. 꽃비가 흩날리는 산길을 굽이돌 때마다 학동몽돌해변의 비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꽃길 도중에는 핑크빛 복사꽃도 피어올라 운치를 더한다. 특히 잿빛 산중에는 산 벚꽃이 점점이 망울을 터뜨려 대번에 산자락의 모습을 화사하게 변모시켜 놓았다.
◆봄꽃 3 '대금산 진달래'
대금산 진달래 군락지도 봄철 거제도의 명물이다. 남부면 다포리 소재 대금산(437.5m)은 신라 때 쇠를 생산했던 곳이라 해서 '대금(大金)산', 산세가 순하고 비단 폭 같은 풀이 온 산을 뒤덮어 '크게 비단을 두른 형상'이라 해서 '대금(大錦)산'이라고도 부른다.
대금산 진달래는 정상 바로 밑 8~9부 능선에 커다란 군락을 이루고 있다. 2만 그루 이상의 진달래가 한 꺼번에 꽃사태를 이뤄 산 능선에는 불이 붙는 듯한 장관을 연출한다. 개화시기에 맞춰 진달래를 주제로 한 등반대회와 산신제례, 보물찾기, 진달래꽃 공예품전시, 지역가수공연 등의 이벤트도 실시한다.
대금산은 주변 경관을 굽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정상에 오르면 멀리 대마도가 보이고 부산, 마산, 진해와 한려수도의 아름다운 해안선이 한 눈에 들어온다.
특히 7부 능선까지 차량진입이 가능해 온 가족이 부담 없이 오를 수 있다
◆봄꽃 4 '바람의 언덕 동백꽃'
거제의 대표적 봄꽃으로는 동백을 빼놓을 수가 없다. 선홍빛 두툼한 꽃송이와 짙은 초록의 잎사귀가 화사하고도 강건한 자태를 뽐내는 동백은 감상만으로도 건강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 특히 동백은 떨어진 모습조차도 아름답다. 동백이 진 자리는 마치 붉은 카펫이라도 깔아 놓은 듯, 운치 있는 꽃길을 형성한다. 거제의 동백 감상 포인트로는 학동, 지심도 등을 꼽을 수 있지만 '바람의 언덕'도 나름 운치가 있다. 특히 이즈음 아름드리 동백나무 그늘 아래 들어서면 아이 주먹만한 두툼한 낙화를 감상할 수 있다.
◆봄꽃 5 '신선대 유채꽃'
신선대는 해금강과 더불어 거제 최고의 비경으로 꼽히는 곳이다. 신선대 일원은 기암절벽이 굽이치는 해안과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이 한 폭의 그림엽서를 담아내는 곳이다. 뿐만 아니라 탐방로를 따라 바닷가 기암절벽에 까지 다가가갈 수 있어 산책코스로도 그만이다. 신선대 주변에는 요즘 유채꽃이 만발했다. 노란 유채꽃과 쪽빛 바다가 어우러져 멋진 풍광을 이뤄 낸다. 이 같은 비경 속에 럭셔리 숙박시설이 들어서 있다. 지중해풍의 '블루마우리조트'가 그곳으로 흰 벽에다 테라코타풍의 지붕을 얹어 외관부터가 낭만적이다.
<거제의 봄별미>
◆봄 별미 1 '외포항 봄멸'
요즘 봄의 미각을 흠씬 느낄 수 있는 별미가 있다. 바로 '봄멸'이다. 봄에 난 멸치라 해서 '봄멸'. 작은 몸집에 남해 바다의 싱싱한 봄기운을 가득 담고 있어 집 채 만한 고래가 부럽지 않다. 국내 3대 멸치 생산지로는 기장 대변, 남해 미조, 거제 외포를 꼽을 수 있다. 그중 거제 외포 멸치는 그 맛이 고소하고 육질이 부드러워 미식가들 사이 명품 멸치로 꼽힌다.
파닥파닥 은빛 비늘 반짝이는 싱싱한 멸치는 부드럽고 고소한 게 횟감으로도 그만이며, 얼큰하게 끓여내는 찌개는 밥반찬은 물론 한 잔의 소주를 그립게 한다. 연탄불에 올려놓고 바싹 구워낸 구이 또한 겨울 양미리 못지않다
유자망으로 잡은 대멸은 거친 조류를 따라 이동하는 관계로 운동량이 많다. 때문에 단련된 육질에 지방도 적당해 횟감으로 그만이다. 어른 중지 손가락 보다 더 큰 대멸은 주로 뼈만 발라내고 그냥 회로 먹거나 무쳐 먹는다. 특히 미나리와 양배추, 깻잎, 당근, 상추 등을 넣고 매콤한 초고추장에 무쳐 먹는 맛이 일품이다. 멸치회는 작지만 먹음직스럽다. 부드러운 듯 고소한 게 한두 번 우물거리면 혀끝에서 사라지고 만다. 비린내 대신 고소한 고등어의 맛도 살짝 느껴진다.
거제의 멸치 미식기행지로는 장목면 외포 '양지바위식당'이 맛집으로 통한다. 이 집은 봄멸을 방풍, 원추리, 머위, 두릅, 세발나물 등 봄나물에 싸 먹는 게 특징이다.
싱싱한 바다의 봄기운과 육지의 파릇한 봄나물이 어우러지니 그 맛이 일품이다.
이 집의 멸치찌개는 대변, 미조의 것과는 좀 다르다. 시래기를 넣지 않는 대신 들깨를 듬뿍 넣어 걸쭉 고소하게 끓인다. 부드러운 멸치 살과 고소한 들깨향이 어우러져 부드러운 비지찌개를 맛보는 듯하다. 특히 식성에 따라 젠피 가루를 넣어 맛을 내는데, 마치 태국 전통 음식 ?c얌꿍을 맛보는 듯하다. 주인은 거제사람들에게는 젠피를 아예 넣어주고, 외지인에게는 따로 제공한다. 멸치회 3만5000(4인 기준)~5만원, 멸치회정식 1만5000원(회+찌개), 멸치쌈밥(8000원).
◆봄별미 2 '신선대 바지락죽'
신선대 주변에서 맛볼 수 있는 별미 중에는 바지락죽을 꼽을 수 있다. 신선대의 '명인 바지락죽'이 맛집으로 쌀, 녹두, 바지락, 표고, 당근, 인삼을 갈아 넣고 수삼을 고명으로 얹은 바지락죽(1만원)은 맛과 영양면에서도 합격점이다. 바닷가 거제를 찾아 간밤에 싱싱한 횟감으로 음주를 즐겼다면 아침-점심 메뉴로 바지락죽이 그만이다
. 죽에 따라 나오는 정갈한 밑반찬도 인상적이다. 김치, 생미역볶음, 버섯들깨볶음, 과일야채피클, 톳나물무침, 콩나물잡채, 두릅, 복분자소스 야채 샐러드 등 한결같이 공을 들인 것들이다. 아울러 양조식초가 아닌 직접 만든 사과 발효식초를 사용해 발갛게 무쳐낸 바지락 무침(2만 5000원) 역시, 새콤달콤 매콤한 게 밥반찬, 술안주로도 그만이다. (055-632-7620)
◆여행 메모
▶가는 길=◇서울~KTX~부산역-렌트카-거가대교-거제(부산역~거제 관광버스 운행 예정)
▶여행 코스=서울~KTX~부산역~거제~바람의 언덕~저구항~매물도 당일여정. 저구항~통영 매물도 선상투어는 유람선으로 1시간 50분 여정. 어른 1만7000원, 어린이 1만원. 맞춤 출항가능, 거제 매물도 유람선(www.매물도유람선.com 055-632-4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