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에 비친 '모던 조선'][17] 도심에 '베이비 골프장'까지… '모던 뽀이'의 놀이터

골프가 이 땅에 상륙한 것은 1900년쯤이지만 첫 18홀 골프장은 1924년 12월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석곶리(오늘의 석관동·청량리 일대)에 세워졌다. 총독부 고관과 기업인 등 80여 회원들이 만든 '경성 꼬르푸 구락부'가 지은 것이다. 당시 골프장은 '꼬르푸 터', 캐디는 '캬데' 혹은 '심부름아이'로 불렀다.

이 신종 서양운동은 처음부터 대중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다. 본지 1924년 10월 8일자에 실린 석곶리 골프장 건설 비판 기사는 '백성의 생활을 위협하는 /배부른 양반들의 놀이터'라고 제목부터 신랄하게 붙였다. 기사는 "부근에 있는 백여호 주민들이…앞으로는 나무 한 덤불 얻어 때지 못하게 되었다"며 산림 훼손에 분노한 서민들 목소리를 전했다.

또 "사원들이 땀을 흘려 벌어놓은 회사의 비용이나 또는 인민의 고혈을 다하여 바친 세금으로 사 놓은 공용 또는 관용 자동차를 유유히 (골프장으로) 몰아갈 것이니 어찌나 뻔번하지 않겠느냐 하는 비난도 곳곳에서 일어나는 모양"이라고 꼬집었다.

조선일보는 10월 10일자에서는 '기아(棄兒)와 꼴푸장'이라는 시평(時評)을 통해 조선을 휩쓴 기근으로 동포들이 굶어 죽는데 골프장을 꼭 세워야 하느냐고 따졌다. 그러나 원성에도 불구하고 1924년 12월 석곶리 골프장은 완공됐다. 1928년에는 평양, 1929년엔 군자리(현재의 어린이대공원), 1932년에는 부산에 골프코스가 속속 개장했다.

멀리 나가는 대신 서울 도심에 축소판으로 꾸민 미니 18홀을 도는 '베이비 골프'까지 시작됐다. 1932년 7월 9일 종로구 관훈동에 '베이비 골프장'이 처음 문을 열었고 1935년 4월에는 경성전기회사가 본정(本町·명동)에도 열었다.

일제하의 골프장들은 1940년대 '전시 총동원체제' 실시에 따라 폐쇄되기까지 10여년간 성황을 이뤘다. 하지만 대중들의 반감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조선일보 가정·아동 면에는 "골프는 개인주의적이어서 공동적 정신을 길러야 할 청년들에게는 적당하지 않은 운동"(1933년 6월 4일자)이라는 골프 비판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소설 '태평천하' '레디메이드 인생' 등 풍자문학으로 유명한 작가 채만식은 1932년 7월 9일자 본지 '모던 라이프'난에 기고한 글을 통해 베이비 골프장에 지식인들은 별로 없고 한량 같은 '모던 뽀이'들이 북적대는 풍경을 이렇게 꼬집었다.

"어제 저녁에 '바××'에서 어찌어찌 했다든가 쯤의 사교적 담화쯤은 척척 내어놓을 만한 청년신사들이(골프를 친다)…후에 내 친구가 경성부윤(府尹)이 된다면 나는 그에게 권고하여 '모던 뽀이, 모던 껄 사절/가족동반자·두뇌노동자 대환영'이라는 패를 써 붙인 베이비 골프장을 많이 만들어 놓게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