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탈당한 옥책문(옥에 새긴 왕비의 덕) 반환도 이뤄졌으면…"

"내 물건 내가 찾아가는 건데 '대여' 형식으로 간다는 게 애통합니다. 5년(1차 대여기간) 뒤엔 반드시 소유권을 되찾을 수 있도록 전 국민이 합심해 노력해주셔야 합니다."

36년 전인 1975년 프랑스 국립도서관 별관 창고에 '파지(破紙)'로 분류된 채 먼지에 파묻혀 있던 외규장각 도서의 존재를 한국에 처음 알렸던 박병선(83) 박사. 우리가 약탈당한 문화재의 대명사격인 그 외규장각 도서가 14일 145년 만에 고국의 품으로 돌아가게 됐다. 하지만 그는 온전히 기뻐할 수만은 없다는 표정이었다.

"코끝을 자극하던 고서의 그윽한 묵향(墨香)이 지금도 생각나요. 한 장 한 장 내 손때가 묻은 그 책들이 고국으로 돌아간다니 너무 기뻐 나도 따라가고 싶을 지경이에요. 하지만 '반환'이 아니라 '대여' 형식인 게 너무 안타깝습니다. 내가 책이라면 울면서 (서울로) 갈 것 같아요."

1975년 프랑스 국립도서관 촉탁 직원이던 시절, 그는 창고에서 발견한 이 도서들이 조선왕실의 행사를 그림과 함께 기록한 의궤이고, 1866년 프랑스 함대가 조선을 침공한 병인양요 때 약탈당한 문화재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가 외규장각 도서 문제를 제기하자, 프랑스 국립도서관은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을 고증한 공로자인 그를 해고해버렸다. 하지만 박씨는 해고 후에도 10여년간 매일 도서관에 출근하다시피 하면서 외규장각 도서 297권의 내용 파악에 매달렸다.

그의 노력은 외규장각 도서 반환운동에 불을 지폈다. 반환에 물꼬가 트인 것은 지난해 11월 서울 G20 정상회의. 이명박 대통령과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간에 반환 합의가 이뤄졌다. 이에 따라 외규장각 도서 총 296권(1권은 이미 한국에 전달)이 5월 말까지 4차례로 나뉘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관된다. 정부는 실질적 반환이라고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5년 단위 갱신 가능한 대여' 형식 반환이다.

박씨는 고령에다가 지난해 한국에서 직장암 수술을 받아 지팡이 없인 거동조차 힘겹다. 하지만 요즘도 매주 두 번 주불 대사관 3층에 마련된 사무실에 출근해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들이 남긴 기록물을 훑고 있다.

그는 자신이 마무리를 못하면 후학들이 맡아줬으면 하는 과제를 하나 둘 풀어놓았다. 우선 외규장각 도서와 함께 약탈당한 옥책문(玉冊文·왕비의 덕을 칭송한 글을 옥에 새긴 것) 등 다른 문화재의 존재를 확인하는 작업이다. 그는 "옥책문 하나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돼 있고, 다른 하나는 나폴레옹 황제에게 선물로 전달됐다는 기록이 있으니까, 황제가 살던 퐁텐블로궁 창고 어디엔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구한말 주한 프랑스 영사가 본국으로 보낸 외교문서를 해독해 독립운동사의 사각지대를 메우는 일도 마무리 짓고 싶은 과제의 하나다. 그는 "프랑스 외무성 문서보관소를 뒤져보면 우리 독립운동사 기록을 대거 발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