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 인생, 수필에 다 바쳤죠"

대학 국문과나 문예창작과 커리큘럼에 '수필론'이 들어가는 일은 드물다. 게다가 석·박사 논문 주제를 '수필'로 잡는 학생들은 더욱 찾기 힘들다. '학(學)'으로서의 수필은 푸대접을 받고 있는 현실에서 평생을 '수필학' 탐구에 전념한 학자가 있다. 계간 '현대수필' 발행인인 1세대 수필가 윤재천(80) 전 중앙대 교수다. 그는 1974년 상명여대 사대 국어과 교수 시절 국내 최초로 '수필론' 강좌를 개설한 인물. 서울 서초동 작업실 책장 한 편을 뒤적이더니, 10쪽짜리 빛바랜 작은 명부(名簿)를 꺼낸다. 1971년 발행된 국제 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명단이다. 수필분과 회원이래 봐야 고작 17명. 이제는 세상을 떠난 조경희(1918~2005), 전숙희(1919~2010) 선생과 그의 이름이 보인다. 요즘 문인협회 수필분과에 등록된 회원 수만 3000명이라니 격세지감이다. 그는 "1956년 중대 국문과 대학원 시절부터 수필을 썼으니 올해로 딱 56년 됐다"면서 "이제는 이 명부에서 살아 있는 분을 찾기가 더 힘들게 됐다"며 웃었다.

'붓가는 대로 쓰는 글'이라는 수필의 느슨한 정의를 넘어 그는 조금 더 욕심이 있다. "단순히 경험과 체험만 가지고는 문학이 될 수 없다. 수필이 '비문학'이라는 오명을 극복하기 위해서도 수필을 쓰는 사람들이 더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문으로서의 수필 연구를 위해 '수필학' 학술집을 18년째 펴내고 대학도서관에 배포하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모든 사람이 편하게 수필을 읽고 쓸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하에, 그는 시와 미술 등 다른 장르와의 '퓨전 수필' 형식의 해체와 재창조를 담아내는 '아방가르드 수필' 등을 제안하고 가르치고 있다. 1992년 그가 창간한 계간 '현대수필'은 올해로 20년째. 매호 등단 수필가의 수를 3명 이내로 제한하는 자체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도 '현대수필'의 자부심이다.

오는 28일은 그의 팔순. 112명의 제자가 이를 기념해 헌정집 '윤재천 수필의 길 50년'(문학관 북스)을 펴냈다. 그날 서울 팔레스호텔에서 조촐하게 헌정식과 기념식도 갖는다. 마광수 연세대 교수는 그를 "수필문학의 이론과 비평, 작품에 평생을 바친 분"이라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