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외규장각 도서] 145년前 서양 증기선에 실려간 '역사'… 우리 비행기로 싣고 오다

20년간의 기다림. 1991년 10월 외규장각 도서 반환 운동 시작 후 숱한 곡절을 겪은 시간이었다. 반환 약속의 뉴스도 처음에는 심드렁하게 들렸다. '또 이러다 잘못되겠지.' 의구심은 남았지만 '5년 단위 갱신(更新) 대여'로 돌아온다는 조건이 오히려 믿음 가기 시작했다. 그렇다, 돌려보내는 사람도 구실이 있어야겠지. 그래도 남았던 찌꺼기 같은 의심은 인천공항 도착→무진동 특수차 수송→국립중앙박물관 도착이라는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완전히 사라졌다.

의궤는 나라의 의전과 각종 행사의 순서, 동원 도구, 참여인에 관한 모든 정보를 담은 기록이다. 그 가치는 두 가지. 하나는 문화재로서의 가치다. 왕에게 올린 의궤를 만드는 데 사용한 '초주지(草注紙)'는 색이 변하지 않는다. 20년 전 미테랑 대통령이 가져온 한 책이 방송에 나왔을 때 우리는 프랑스를 문화대국이라고 칭찬했다. 그 종이가 변색하지 않는 특수지란 것은 모르고 프랑스의 보존기술 때문에 온전히 보존됐다고 착각한 것이다. 초주지로 만든 다른 규장각 의궤가 많지만 그간 초주지의 기술과 그 비밀을 밝혀내지 않았다. 이참에 그 신비의 기술을 밝히는 게 과제다. 또 그 좋은 종이에 붉은색 줄 긋고 정성스레 쓴 글씨, 정교하게 그린 그림 역시 세밀히 살펴 연구해야 한다.

둘째, 조선왕실이 의궤를 많이 제작한 것은 국가 운영의 기준을 바로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왕의 행차도(반차도)는 왕실의 위세를 드러내려는 게 아니었다. 조선 후기의 왕들은 힘없는 백성을 보려고 궁성, 왕성(서울)을 나와 바깥 행차를 자주 했다. 그 행차 때는 미리 쉬는 곳을 널리 알리어, 전국에서 억울한 사정이 있는 백성들이 와서 글로 쓴 소장을 올렸다. 소민들을 직접 만나기 위한 왕들의 의도된 행차였다. 중국·일본에는 왕이 이렇게 백성과 직접 접하는 역사도 없었고, 그 과정을 밝힌 의궤도 없다. 의궤는 왕실 호사품이 아니라 지금 대한민국의 민주화가 가장 빠른 이유를 밝혀줄 귀중한 자료 구실도 할 것이다. 역사학자들은 특히 국내에 없던 유일본 30권을 안고 힘써 연구해야 할 것이다.

145년 전, 강화도 앞바다에서 이국의 증기선에 실려 떠나간 왕실 의궤는 이제 바로 그와 마주한 인천공항을 통해 되돌아왔다. 증기선을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던 사람들이 한 세기 반 만에 세계 제일의 허브 공항을 만들어놓고 자국 항공기로 빼앗겼던 문화재를 찾아 실어왔다. 이런 일이 세계 어느 나라에 있었다던가.

외규장각 의궤의 반환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20년간의 시행착오는 미래의 자산이 되게 하고 반환운동에 모였던 온 국민의 문화적 열망을 문화대국으로 거듭나는 에너지로 삼아야 한다. 의궤에 담긴 모든 내용은 고품격 제품이자 상품이다. 그 자부심이 우리를 문화민족으로 새로 거듭나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