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호스피스병원에 계신 마지막 27일 동안, 평생 나눈 것보다 훨씬 많은 대화를 나눴다"(말기암 아버지의 아들)

"나는 지금 이 고통을 즐기고 있다. 너희 눈에는 그냥 고통으로 보이겠지만 하늘로 가는 길은 아주 시원하고 아름다운 길이다. 그래서 행복하다. 햇빛 밝은 쪽마루에 앉아서 맑은 물로 발을 싹싹 닦은 것처럼 상쾌해. 아주 기분이 좋아."

조성권(59)씨는 5년 전 호스피스병원(모현센터의원)에서 생을 마감한 아버지(당시 90세)의 마지막 27일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6·25 참전용사로 훈장을 12개 받았고, 실향민으로 가정을 일으킨 '불사조'같던 아버지는 폐암과 피부암으로 끔찍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담담하고 평온하게 삶을 정리했다.

조씨의 아버지는 2005년 말기 암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6개월 남았다. 항암치료를 하면 6개월~1년 정도를 살 수 있다"고 했다. 고령이라 암 진행이 늦지만, 항암치료로 오히려 기력이 더 쇠할 수도 있었다.

조씨는 처음 호스피스병원에 아버지를 모실 때는 죄스러운 마음이 컸다고 했다. "당시는 호스피스병원이 회생 불능인 환자들이 막연하게 죽음을 기다리는 장소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아버지를 '고려장' 지내는 패륜은 아닐까 싶어 고통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입원 하루 만에 "이곳이 천국"이라고 했다고 한다. 병원은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면서 환자가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한 상태에서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삶을 마무리하도록 도왔다. 조씨는 "아버지가 호스피스병원에 계신 27일 동안 평생 나눈 것보다 훨씬 많은 대화를 나눴다"며 "아버지의 형형한 눈빛도 점점 온화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2006년 4월 22일 조씨의 아버지는 가족들을 모두 병원으로 불러 마지막 인사를 하듯 덕담을 나눴고, 그간의 잘못을 모두 용서했다. 가족들이 돌아가고 30분이 채 안 돼 아버지는 의식을 잃었고, 이튿날 정오에 영원한 잠에 들었다. 생전에 그토록 좋아하던 목련이 활짝 핀 날이었다.

조씨는 "아버지는 마지막 27일 동안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고, 화해하고 용서하는 과정을 담담히 치르셨다"며 "탄생과 마찬가지로 죽음도 준비하는 자에게는 '축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국립암센터는 2010년 말기 암환자 정보시스템 분석 결과 완화의료(호스피스) 전문기관에서 완화의료 서비스를 받은 말기 암 환자는 6564명으로 전체 암 사망자(약 7만명)의 약 9%만이 완화의료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14일 밝혔다. 미국의 경우 암 사망자를 포함한 전체 사망자 245만명 중 102만명(41.6%)이 완화의료 서비스를 이용했다(2009년).

국립암센터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완화의료 전문기관 입원 1주일 만에 통증도가 크게 완화(2.8→2.1)됐고, 전반적인 치료 만족도도 기존 의료기관(63.9%)에 비해 완화의료 전문기관(84.7%)이 높게 나타났다.

국립암센터 김열 호스피스완화의료사업과장은 "암을 '완치 아니면 포기'라고 이분법적으로 인식하는 것은 환자와 보호자에게 모두 고통이 된다"며 "완화의료를 보다 일찍 선택할수록 자기 결정으로 삶을 정리하고 마지막 인생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다"고 말했다.